[곽인찬칼럼]

관중 아니면 포숙이라도/곽인찬 논설실장

곧 개각이 있을 모양이다. 총리를 비롯해 이명박 정부의 집권 후반기를 이끌어갈 얼굴들이 많이 바뀔 듯하다. 전반기 이 대통령의 인사는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다. "참 잘 골랐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인재 풀이 좁아 회전문 인사도 빈번했다. 그나마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은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에 걸려 넘어졌다. 그 말고는 공정거래위원장→국세청장→청와대 정책실장으로 보직을 옮긴 백용호 전 교수와 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된 귀화 한국인 이참씨 등이 기억에 남을 정도다.

인사는 참 어렵다. 역사를 보면 인사를 잘해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가 자주 나온다. 따지고 보면 이는 결과론일 뿐이다. 성공한 사람을 놓고 나중에 칭찬을 늘어놓는 격이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은 비판의 화살을 비켜가지 못한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역사책을 뒤적이는 것은 현재를 비추는 데 과거만큼 좋은 거울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유방과 항우를 보자. 진시황 사후 중국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최후의 승자는 유방이었다. 건달 출신 유방이 패권을 거머쥔 원인을 설명할 때 탁월한 용인술이 빠지지 않는다. 유방이 항우를 물리친 뒤 공신들과 술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계략을 짜는 것은 장량만 못하고 양식을 공급하며 운송로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소하만 못하고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점령하는 것은 한신만 못하다. 그런데도 내가 천하를 얻은 것은 걸출한 세 사람을 기용했기 때문이다." 후세 사람들은 이 셋을 일러 서한 3걸이라 불렀다. 서한(西漢)은 전한(前漢)의 다른 이름이다. 자기보다 출중한 인물을 등용한 유방은 오늘날 용인술의 달인 대접을 받는다.

항우는 초나라 명문 출신으로 유방과는 격이 달랐다. 젊고 잘생긴데다 무용도 남달랐다. 그는 굳이 누구한테 기댈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자 인재들은 하나둘씩 항우의 곁을 떠났다. 한신은 항우 밑에서 몇 차례 계책을 올렸으나 무시당하자 유방에게 몸을 맡겼다. 계략의 명수 진평은 싸움에 져 항우의 분노에 직면하자 역시 유방 품으로 몸을 숨겼다. 항우에겐 유일하게 존경하고 따르던 참모 범증이 있었다. 진평은 이간책으로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울화통이 터진 범증은 자리를 내던지고 낙향하는 길에 객사하고 만다. 이로써 천하쟁패의 운명이 갈렸다.

유방은 약점투성이 인물이었다. 술과 여색을 밝혔고 오만했다. 고향친구 소하는 유방의 장인에게 "늘 큰소리만 치고 행동으로 옮기는 건 드문 사람"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유방은 자기의 부족한 점을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인재를 과감히 등용하고 믿고 맡겼다. 일본 역사소설가인 시바 료타로는 이 같은 유방의 인품을 '허(虛)의 인격'이라고 불렀다('사기의 경영학'·김영수 지음). 그릇이 비어야 채울 수 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현대에 톱 리더 혼자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유방은 21세기형 리더의 전형을 제시한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인재 발탁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을 재상에 기용한 것이 아닐까. 관중은 환공을 화살로 쏴 죽이려 했던 인물이다. 이런 원수를 재상에 기용한 데는 관중의 친구인 포숙(鮑叔)의 강력한 추천이 작용했으나 환공의 포용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환공은 나중에 관중의 보필 덕에 이른바 춘추오패의 첫 패권을 차지한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후세에 전해온다.

"불행한 사실은 내가 사냥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한다는 것이오. 이것이 패업(覇業)에 영향을 주지 않겠소?"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 무엇이 영향을 준단 말이오?"

"인재를 몰라보는 것이야말로 패업에 방해가 됩니다. 인재를 알고도 기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패업에 방해가 되며 기용하고도 소중하게 쓰지 않는 것도 패업에 방해가 됩니다. 소중하게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사사건건 간섭하고 의심하는 것이야말로 패업에 방해가 됩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겠지만 되풀이하자면 인사가 만사다.
5년 단임제 아래서 집권 후반기는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때다. 그럴수록 걸출한 인재가 절실하다. 이번 개각은 전반기에 얻은 박한 점수를 만회할 사실상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관중이면 더 좋고 어디 포숙이라도 없을까.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