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기기,돈벌이 되는 콘텐츠 빈약

스마트폰에 이어 태블릿PC, 스마트TV 등 각종 디지털기기들이 '스마트'라는 이름을 달고 치열한 시장 선점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국내에는 스마트란 이름에 걸맞은 콘텐츠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세계 최고의 유·무선 인터넷 망을 깔고 각종 스마트기기들을 불티나게 팔고 있는 국내 디지털시장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콘텐츠는 외국 업체들에 고스란히 '안방' 시장을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1일 방송통신위원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79개 방송프로그램공급업체(PP)의 연간 콘텐츠 수급비용은 5236억원이었고, 이 중 자체제작 투자비는 2502억원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종합채널 HBO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수급하는 데 연간 1조6412억원을 쓰는 것을 고려하면 국내 PP 전체가 글로벌 채널 한 개의 30%에도 못 미치는 비용으로 콘텐츠를 수급하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폰이 세계를 주도하는 이유는 25만여개의 방대한 응용프로그램 장터(앱스토어)의 콘텐츠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나 팬택 등이 서둘러 안드로이드폰을 만들어 애플을 추격했지만 콘텐츠의 열세를 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최대 앱스토어라고 자랑하는 SK텔레콤의 'T스토어'가 보유한 콘텐츠는 4만5000여개로 애플 앱스토어의 20%에도 못 미친다. 결국 하드웨어 경쟁력은 앞서면서도 스마트폰 시대에 소비자의 콘텐츠 욕구를 채워주지 못해 아이폰에 안방을 내주고 있는 게 스마트폰 시장의 현실이다.

문제는 콘텐츠 부족 문제가 스마트폰에서 그치지 않고 스마트TV산업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스마트TV란 TV 수상기에 운영체제(OS)를 장착하고 인터넷을 연결, 과거 PC로 보던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는 것은 물론 방송 프로그램도 원하는 것을 골라 원하는 시간에 찾아보는 신개념 TV다. 방송사가 짜놓은 시간에 맞춰 프로그램을 받아 보기만 하던 소비자들이 스마트TV로는 직접 인터넷에 연결, 다양한 콘텐츠를 골라 보기 때문에 스마트TV의 핵심 경쟁력은 콘텐츠로 꼽힌다.

이 때문에 그동안 삼성·LG에 세계 TV시장의 주도권을 넘겨준 소니는 일찌감치 구글과 손잡고 스마트TV 시대를 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영화와 음악 등 소니의 콘텐츠 경쟁력을 내세워 국내 TV업체를 앞지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2007년 NBC유니버설과 뉴스코퍼레이션이 스마트TV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방송콘텐츠 전문 유통채널인 '훌루'는 2600여개의 최신 TV 프로그램과 1000여개의 영화 및 다큐멘터리를 AOL, MSN, 야후 등 40여개 인터넷 사이트에 제공하면서 세계 스마트TV 시장의 복병으로 부상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스마트TV 업체들이 훌루와 손잡기 위해 진땀을 흘리는 이유도 콘텐츠 경쟁력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열악한 방송 콘텐츠 제작환경 때문에 스마트TV 시대 주도권을 잡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삼성·LG전자도 스마트TV용 콘텐츠 부족으로 차세대 TV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고민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총 50만달러(약 6억원)가 걸린 TV 애플리케이션 콘테스트를 여는 것도 해외에서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LG전자도 스마트TV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튜브, 오렌지, 미국 프로야구 같은 프로그램 업체와 제휴해 콘텐츠 수급전략을 세워 놨다.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심상민 교수는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 정부와 업계가 콘텐츠 부족 문제를 메우겠다고 스마트TV포럼 구성을 준비하면서 가전업체와 인터넷TV(IPTV) 사업자, 케이블TV 방송사업자(SO) 등으로 포럼을 구성해 정작 핵심인 콘텐츠를 주변으로 밀어내는 정책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전문가는 "국내 업체들이 세계시장을 주도하던 휴대폰산업에서 스마트폰 등장 이후 경쟁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스마트TV시장에서 재연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콘텐츠 확충을 위해 정부와 업계가 총력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cafe9@fnnews.com이구순 권해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