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신한 너마저/곽인찬 논설실장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09.14 17:34

수정 2010.09.14 17:34

칼을 든 암살자들의 무리 속에서 브루투스를 발견한 카이사르는 체념한 듯 피묻은 토가를 뒤집어 썼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카이사르는 무수한 칼부림 끝에 원로원 바닥에 굴렀다. 그가 최후로 내뱉은 말은 라틴어로 "Et tu, Brute?"였다(셰익스피어의 비극 '줄리우스 카이사르').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뜻이다. 이른바 '신한사태'가 터졌을 때 번뜩 이 말이 떠올랐다. "신한, 너마저…."

신한은행은 내가 주로 거래하는 은행이다. 다른 은행 다 놔두고 신한을 택한 이유는 가장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흔들리는 중이다. 말단 직원이 창구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최고위층이 사고를 쳤다. 그것도 집단으로. 잉꼬로 소문난 스타 연예인 부부의 파경 소식이 들려오면 일종의 배신감이 든다. 지금 신한사태를 보는 기분이 바로 그렇다.

오늘의 신한을 일군 라응찬 금융지주 회장, 신상훈 지주 사장, 이백순 행장 3인은 도대체 왜 저렇게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는가. 나 같으면 경쟁자인 어윤대 KB금융 회장의 얼굴이 어른거려서라도 얼른 진흙탕에서 빠져나오고 싶을 텐데 세 사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 북서쪽 에피루스의 피로스 왕은 두 차례에 걸쳐 로마군을 물리쳤다. 싸움은 이겼지만 피로스 왕의 군대는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었다. 로마는 사상자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인적 자원이 풍부했으나 에피루스는 그렇지 못했다. 여기서 상처뿐인 영광을 뜻하는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는 말이 나왔다. '승자의 저주'도 비슷한 말이다. 오늘날 세계사에서 에피루스와 로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신한 목장의 결투'에서 라·이 콤비가 이기면 신한이 세계 굴지의 은행으로 벌떡 일어서게 될까. 아니면 홀로 버틴 신 사장이 이겨야 앞날이 창창할까. 미안하지만 둘 다 아니다. 누가 이겨도 상처뿐인 영광이다. 이사회는 싸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라 회장이 금융감독원 조사를 받는 동안 신 사장은 검찰 청사를 들락거리게 될 거다. 이미 고소와 맞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도 끼어들 태세다. 펑펑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신한의 신뢰는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자해도 이런 자해가 없다.

먼 옛날 프리기아에 황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고르디우스라는 농부가 나타났다. 프리기아 사람들은 신탁(神託)에 따라 고르디우스를 왕으로 모셨다. 고르디우스는 고마움의 표시로 자기가 타고 온 수레를 꽁꽁 묶어 제우스 신전에 바쳤다. 기원전 333년 야망에 불타는 알렉산더 대왕이 수레 앞에 섰다. 매듭을 푸는 자만이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알렉산더는 단칼에 매듭을 잘라버렸다. 여기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일이 꼬일 땐 알렉산더와 같은 대담한 해법이 필요한 법이다.

이제 3인 앞에 매듭이 놓여 있다. 아무리 용을 써도 풀리지 않는 매듭이다. 손을 댈수록 더 꼬여만 간다. 자, 어쩔 텐가. 알렉산더 대왕처럼 단칼에 끊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매듭을 풀겠다고 신전에 틀어박혀 이전투구를 벌일 것인가. 끝끝내 고집할 경우 3인 앞에는 공멸이 기다리고 있다. 게임 이론 중에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상황(No-win situation)'이 있다. 사형 집행관이 사형수에게 교수형·총살형·독살형 중 하나를 고르라고 선택권을 줬다고 치자. 관대한 처사 같지만 뭘 선택하든 죽음을 면치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선택권이 있으니 살아날 구멍이 있는 것 같지만 부질없는 희망이다.


늘 뭘 쓸까 고민하는 나 같은 글쟁이에겐 신한사태가 반갑다. 싸움 구경은 불 구경만큼이나 재미있으니까. 그러나 신한은행 고객의 입장에 서면 속이 터질 지경이다.
고객으로서 묻는다. "라 회장님, 이 행장님, 신 사장님, 도대체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paulk@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