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달러냐 위안이냐/곽인찬 논설실장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0.11.30 17:08

수정 2014.11.04 14:47

천둥벌거숭이 북한을 편드는 중국이 아무리 밉상이라도 차가운 머리로 따져봐야 할 게 있다. 바로 위안 결제다. 중국과 교역에서 미국 달러 대신 위안을 쓰자는 얘기다. 정서적으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러다 한국 경제가 완전히 중화권에 포섭당하면 어쩌려고? 우리를 도우려 항공모함까지 파견한 미국을 버리고 G2 통화패권에서 중국 편을 들라고? 대중 불안과 대미 의리가 동시에 고개를 든다. 그래서 ‘차가운 머리’로 따져보자는 거다.


감정의 지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미 위안 결제의 좋은 점을 간파했다. 산은경제연구소는 위안 결제가 달러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금융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외환·금융위기 때 달러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던 경험을 떠올리면 귀가 솔깃하다. 더불어 기업들은 환변동 위험을 낮추고 환전수수료 절감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 아닌가.

한국은행도 아시아에서 위안과 달러가 통화패권을 놓고 다툴 것이라는 보고서를 얼마 전 내놨다. 보고서는 “위안이 달러의 지위를 잠식하면서 지역통화로 성장하는 한편 유로도 지역통화 기능을 갖는 ‘기축통화의 다극화 체제’로 옮겨갈 것”으로 전망했다.

한번 상상해보자. 앞으로 한국 수출입 기업들은 중국과 거래할 땐 위안, 유럽과 거래할 땐 유로, 미국 등 그 밖의 지역과 거래할 땐 달러로 결제하는 거다. 그러면 오로지 달러에 한국 경제의 운명을 거는 리스크를 3분의 1로 낮출 수 있지 않을까. 동시에 수출 경쟁력과 기업 이익을 쥐락펴락하는 원·달러 환율의 덫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위안 결제는 현실이다. 중국은 최근 러시아와 위안·루블 직접 거래를 시작했다. 예전엔 달러를 매개로 간접 거래하는 방식이었으나 맞교환 방식으로 바꿨다. 이로써 위안과 직거래가 트인 통화는 달러·유로·홍콩달러·파운드·링깃(말레이시아) 등에 이어 루블까지 7개로 늘어났다. 중국은 여기에 한국 원을 포함시키려 한다. 그러니 우리가 적극 호응하기만 하면 조지 워싱턴 대통령만큼이나 마오쩌둥 주석의 초상화를 자주 볼 날도 멀지 않았다.

중국은 국제시장에서 금을 야금야금 사모으는 등 위안의 기축통화 작업을 천천히 그러나 끈기 있게 진행하고 있다. 자국 통화의 신뢰를 높이는 데는 금만한 게 없다. 전후 브레턴우즈 체제 아래서 미국은 달러의 가치를 온스당 35달러에 고정시켰다. 35달러를 들고 오면 금 1온스를 내주겠다는 뜻이다. 물론 닉슨 쇼크로 35달러 룰은 무너졌지만 ‘달러=안전자산’ 등식은 금본위제에서 출발했다. 중국은 미국의 선례를 따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은 세계에서 대중 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힌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2008년 상반기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4.2% 가운데 대중 수출의 기여도가 2.2%포인트를 차지해 기여율이 52%에 이르렀다. 올 상반기 총수출에서 대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1%에 달해 금융위기 이전 수치(27%)를 크게 웃돌았다. 싫든 좋든 이제 중국 없는 한국 경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한반도를 둘러싼 팽팽한 군사적 긴장 속에 위안 결제의 대중화에 대한 반감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더구나 중국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한국 국채까지 대량 매입하고 있지 않은가. 중국 내 친북세력의 원조 격인 마오쩌둥의 얼굴을 자주 보는 것도 사실 달갑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 결제는 늘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내년 칸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통화 시스템 개혁을 주요 안건으로 다루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지만 달러의 위상 저하와 위안의 위상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뼈저린 아픔 속에서도 위안 결제의 득실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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