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칼럼]

재벌 2세와 야구방망이/곽인찬 논설실장

19금 우스갯소리 한 토막. 흥부가 형 놀부네를 찾아가니 마침 형수가 윤기 잘잘 흐르는 쌀밥을 푸고 있다. 며칠째 굶은 흥부, “형수님, 저 흥분데요” 은근히 말을 건넨다. 그 말을 들은 형수가 밥주걱으로 냅다 흥부의 뺨을 갈긴다. “아니 이 놈이 어따대고 수작이야. 감히 형수를 보고….” 분위기 파악 못한 흥부, 이번엔 애절하게 “형수님, 저 흥분데요.” 다시 뺨을 올려붙이는 형수. 그날 흥부는 뺨에 붙은 밥풀만으로 끼니를 채웠다나 어쨌다나.

흥부가 매값을 자청한 적도 있다. 마을 김부자가 곤장 서른 대를 대신 맞을 사람을 찾자 한 대에 한 냥씩 서른 냥에 눈이 멀어 휘적휘적 감영(監營)을 찾아간다. 그때 마침 살인자를 뺀 모든 죄인을 놓아주라는 영이 내린다. 낙담한 흥부, 터벅터벅 집에 당도하니 푼수 마누라는 “우리 낭군 살아 돌아왔다”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매값을 돈으로 셈하듯 부자들은 종종 어려움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미국 남북전쟁 때 부자들은 징병을 피해 대리인을 사서 대신 복무케 했다. 그 중엔 앤드루 카네기와 J P 모건도 있다. 흑인 노예를 한 명 ‘구입’해서 대신 전쟁터에 내보내는 식이다. 말도 안 된다고? “북부에서는 대리인을 고용할 권리가 남북전쟁 기간 내내 유지되었다”(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부자는 늘 미움을 받게 마련이지만 슈퍼 갑부 워런 버핏 같은 돌연변이도 있다. 서울 강남에 살았다면 그는 영락없이 따돌림 영순위다. 버핏은 재산의 99%를 또 다른 갑부 빌 게이츠가 세운 자선재단에 기부했고 세금을 더 내지 못해 안달한다.

그는 지난 10월 경제전문지 포천이 주최한 강연에서 “비서와 청소부를 포함해 내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 중 내가 가장 낮은 세율의 세금을 낸다”고 불평했다. 또 ABC방송과 인터뷰에서는 시장 만능주의자들이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낙수(落水)효과(Trickle Down Effect)’를 비판했다. “부자들은 늘 자기들한테 더 많은 돈을 주면 (물이 흘러넘치듯) 그 혜택이 모든 이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지만 지난 10년 간 그런 효과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버핏은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장하준 교수를 연상시킨다. 장 교수는 최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한 조사 결과를 인용, “1979년부터 2006년 사이 미국의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에서 22.9%로 늘었다”고 밝혔다. 결국 낙수효과는 가진자의, 가진자에 의한, 가진자를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선봉에 선 대형 투자가 버핏(80)과 좌파성향의 경제학자 장하준(47)의 의견일치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공통점은 뭘까. 곰곰 생각해 보니 그건 박애주의가 아닐까 싶다. 버핏은 가진자의 의무를 마치 특권인 양 기쁘게 실천한다. 이게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장하준은 지나치면 해롭다는 전제 아래 ‘어느 정도 선까지’ 결과의 균등을 주창한다.

한국 사회는 팍팍하다.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반세기 내내 앞만 보고 달린 결과다. 진심에서 우러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천연기념물만큼 귀하다. 이러니 선진국과 비교한 한국의 사회적 통합 점수는 늘 낙제점이다. 배려는커녕 다 제 잘나서 잘살게 된 줄로 착각한다. 백보 양보해서 죽도록 고생한 창업세대는 그렇다쳐도 부모 잘 만난 덕에 귀족처럼 자란 2세, 3세까지 고결한 의무하곤 담을 쌓고 지낸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이층의 악당’에선 조폭의 호위를 받는 재벌 2세가 ‘재벌 2세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분노를 터뜨리는 허탈한 장면이 나온다.

배려니 고결한 의무니 일체 그만 두고 제발 야구방망이 휘두르고 매값 내던지는 일이나 없으면 좋겠다. 안하무인도 유분수지, 매값이 무슨 낙수효과도 아니고 이거야 원. 흥부라도 이런 매질 앞에선 줄행랑을 놓았을 거다.

/paulk@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