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월드리포트] 출장소가 된 대기업 중국본부/차상근 베이징특파원

차상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1.18 18:03

수정 2013.01.18 18:03

[월드리포트] 출장소가 된 대기업 중국본부/차상근 베이징특파원

요즘 중국 베이징의 한국인 밀집 거주지역인 왕징은 귀임자, 부임자들로 어수선하다.

우리 기업이나 정부 및 유관기관 등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주재원을 파견한 곳이 베이징이며 집중 거주지역이 왕징이다.

그런데 올해 왕징의 분위기가 중국 경기둔화와 함께 전에 없이 가라앉았다. 중소기업은 물론 LG, SK 등 대기업까지 주재원을 대폭 줄이고 그야말로 최소 인원만 남았다는 소식이다. 중국 진출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한 기업은 2년 전보다 주재원을 절반으로 줄였다. 일부 기업은 월요일 아침 한국에서 출장을 와 금요일 저녁에 귀국하는 단기파견 방식으로 현지근무 인력을 대체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최장 180일짜리 비자로 단신 부임하는 방식을 채택한 곳도 있다. 잘나가는 모 기업도 주재원 체류기간을 1년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인 주재원이 줄어들면서 왕징지역 주택 임대료가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에 현지 장기거주자나 자영업자 사이에 잘됐다는 소리도 나온다.

기업들은 중국인에 의해 중국법인을 꾸려가는 현지화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면에는 수익구조 악화에 따른 우선적 비용절감 문제가 깔려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극히 우려하고 있다.

중국 직원들의 이직률은 상당히 높다.

외국계 회사를 징검다리처럼 건너다니면서 실속 없이 몸값만 부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외국계 회사는 물론 중국계 금융회사나 컨설팅사 직원들조차 연봉이 이미 한국 내 고급인력 수준을 능가하고 있다.

시중은행 중국법인이 한 지방도시에 지점을 열기 위해 개설준비위원장을 현지인으로 채용하려는데 은행 업무 경력도 없이 대관 업무만 해온 30대 중반의 여성이 연봉을 법인장 수준으로 요구했다는 말도 있다.

유럽 이상으로 넓고 인맥도 복잡하고 이해관계나 규범, 관습이 얽힌 실타래 같은 중국에서 정교한 네트워크 구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인력을 키우고 네트워크를 확대해 시장 노하우를 더욱 축적해가도 어려울 판에 기존 자산마저 날려버리는 기업들은 중국시장에서 영원히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현지인에 의한 경영이 이상적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너무 나간다면 위험한 실험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사업전망이 불안한 데는 책임만 있고 권한은 주지 않는 기업들의 경영행태에 큰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중국본사를 차려놓았지만 대표는 대개 1, 2년으로 단명이다. 대기업 임원들은 중국으로 발령이 나면 정리를 위한 과정이라고 여긴다.

투자는 물론 사소한 마케팅, 기획 업무까지 무엇 하나 재량권을 발휘할 수 없어 중국법인장이 그룹기획실 부차장보다 못하다는 푸념도 들린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주변 4강 외교로 미국보다 중국을 먼저 선택해 특사를 보낸다.

중국의 위상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외교·안보 쪽도 중요하지만 경제적으로 중국을 놓친다면 한국은 숨도 못 쉴 지경이 됐다.

재벌 상속 문제가 갈수록 논란인데 상속자들이 먼저 중국시장을 책임지고 검증을 받는다면 어떤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룹 차원의 관심 속에서 책임과 권한을 키우며 장기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등 다목적 포석이 될 수 있다는 소박한 바람 같다.


중국은 단기의 손익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플랜 아래 치밀한 세부전략으로 접근해야 하는 시장이다.

그룹 최고위층이 오래전부터 수시로 왕래하며 사업을 직접 챙긴 이랜드 등 몇몇 기업은 대체로 잘나간다.


개혁개방 30여년 만에 최대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에서 우리 기업들도 미래지향적 자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csky@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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