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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억 퇴계 선생 17대 종손 “유학 대중화로 한국인 행복구현 앞장”

김경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1.21 11:30

수정 2013.01.21 11:30

이치억 퇴계 선생 17대 종손 “유학 대중화로 한국인 행복구현 앞장”

퇴계 이황의 17대 종손이 선조인 퇴계의 철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성균관대에서 받아 눈길을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오는 2월 25일 성균관대에서 '퇴계철학의 주리적 특성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 퇴계 선생의 17대 종손 이치억씨(37·사진)다.

이씨는 "퇴계 선조께서 좋은 학문을 남겨주시고 그 길로 이끌어 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한다"면서 "그리고 제가 그 공부를 한 장소가 바로 그분의 숨결이 느껴지는 이곳(성균관대)인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학자인 퇴계 선생께서 40여년을 공부하시고 50세를 넘어서야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다'라고 했던 철학을 겨우 10년 남짓 공부한, 턱없이 부족한 후손이 박사논문으로 쓴다는 것에 솔직히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고 말했다.

퇴계 이황은 1528년 성균관(1398년에 세운 조선조 유일한 국립대)에 학생으로 입학해 1552년 대사성(정3품·현 총장)에 임명된 후 두 번 더 역임했다. 성균관대는 1946년 조선 성균관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올해로 건학 615년이 된다.


이씨는 경북 안동군 도산면 토계리 680 종택인 도산서원에 인근한 종택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시와 소설에 관심이 많은 문학도였다. 집안에 대대로 젖어 있는 가풍과 유교문화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해외 유학을 선택, 아시아 지역문화를 전공하며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잠시 고민하였으나 이때까지 관심을 두지 않은 유학(儒學) 공부에 빠져들게 됐다. 집안 어른들은 대환영이었다.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다지고 '경(敬)의 사상'을 완성한 퇴계 할아버지의 핏줄이 흐르고 있었던 때문일까. 결국 그는 지난 2002년 성균관대 일반대학원 유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이후 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유학이야말로 합리적인 본질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씨는 학생 신분이지만 연애 결혼해 올해 7세 아들을 둔 어엿한 가장이다. 이씨는 "(유교 가풍대로)한 지붕 4대가 화락(和樂)하는 효도를 한 게 이제껏 가장 잘한 일 같다"며 웃음 지었다.

15대 종손인 할아버지도 퇴계사상의 현대적 발양(發揚)에 힘쓰시다 만 100세로 지난 2009년 별세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 퇴직한 아버지는 고향에서 종택을 지키며 '선비문화수련원'을 만들어 후학 양성과 유학 진흥에 힘쓰고 있다.

고모부인 이용태 전 삼보컴퓨터 회장은 퇴계학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집안 전체가 대유(大儒) 퇴계 선생의 사상 발현에 힘쓰고 있는 셈이다. 이씨도 지난 2006년 '동인서원'에서 훈장이 돼 한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씨는 "퇴계의 철학은 도덕론(道德論)이기에 앞서 진정한 행복론이자 구원론이다.
이(理)를 중심에 놓고 이발(理發)의 감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고요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퇴계철학이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퇴계는 70평생을 '어떤 일에든 하나에 집중해 다른 길로 빠지지 않았으며(주일무적·主一無適), 항상 깨어 있으며(상성성·常惺惺), 단정한 몸가짐과 엄숙한 태도(정제엄숙·整齊嚴肅)로 몸과 마음을 삼가 바르게 가지는 일과 사물의 이치를 깊이 탐구하는(거경궁리·居敬窮理) 자세로 일관해 마침내 '경(敬)의 사상'을 완성한 대철학자였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선조인 퇴계의 학덕과 인품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해 유학의 대중화와 관련해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의미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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