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엘리자베스 박’을 꿈꾸며/곽인찬 논설실장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1.21 17:26

수정 2013.01.21 17:26

[곽인찬 칼럼] ‘엘리자베스 박’을 꿈꾸며/곽인찬 논설실장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회의 중 꾸벅꾸벅 졸곤 했다. 1982년 로마 바티칸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알현할 때 꿈나라로 간 것은 유명한 일화다. 유머의 달인답게 그는 제 잠버릇을 소재로 익살을 떨었다. "국가 비상사태가 터지면 언제든 나를 깨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내각회의 중에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졸음이 구설에 오르자 여차하면 깨우라고 지시해 놓았으니 걱정 말라고 눙친 것이다.


이런 레이건을 미국인들은 사랑한다. 지난해 해리스 폴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레이건은 전후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뽑혔다. 2위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3위는 존 F 케네디였다. 해리스는 역대 가장 훌륭한 대통령도 조사했는데 레이건은 에이브러햄 링컨에 이어 2위에 올랐다. 3위는 초대 조지 워싱턴이었다.

레이건은 임금이 모든 정사에 친히 간여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형 통치자가 아니다. 그는 웬만한 건 내각에 맡기고 자신은 큰 덩어리만 챙겼다. 레이건은 '스타워즈' 구상으로 라이벌 소련(현 러시아)을 압박했고 결국 냉전을 자유진영의 승리로 이끌었다. 1987년 6월 그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에 서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향해 "베를린 장벽을 허물라"고 요구했다. 2년 뒤 기적처럼 벽이 무너졌다. 1990년 독일은 숙원이던 통일을 이뤘다. 사회주의는 종언을 고했다. 이 모든 변화의 뒤엔 각료회의 때 수시로 졸던 레이건이 있었다.

16세기 대영제국의 기틀을 놓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도 선이 굵었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본토 침공에 나섰다. 여왕은 사령관 하워드 경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반면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수하 사령관에게 시시콜콜 서면지시를 내렸다. '골리앗' 무적함대는 '다윗' 영국 해군의 화공술에 휘말려 이름에 걸맞지 않은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위풍당당한 아마존 전사의 모습으로 전장에 나타난 여왕은 마법에 가까운 말솜씨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내가 연약한 여자의 몸임을 잘 안다. 그러나 내게는 영국 왕이 응당 지녀야 할 굳은 의지와 용기가 있다…나 스스로 무기를 집어 들고, 나 스스로 그대들의 사령관이 되고, 그대들의 공적을 치하하며 포상을 내릴 것이다." 연설이 끝나자 병사들은 함성을 질렀다. 스페인을 누르고 해상무역권을 장악한 영국은 유럽의 변방에서 최강국으로 거듭났다.

여왕은 백성을 끔찍이 아꼈다. 치세 말년에 긴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했다. 귀족의 독점권 남용이 백성들의 삶을 더 어렵게 했다. 하원은 여왕에게 독점권 폐지를 요구했다.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여왕은 저 유명한 '황금의 연설(Golden Speech)'로 의회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나보다 더 강하고 현명한 군주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만큼 백성을 사랑한 군주는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여왕은 독점권의 폐해를 알려준 의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하원은 왕실예산 4배 인상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킴으로써 여왕의 '자비'에 화답했다.

나는 박근혜 차기 대통령이 레이건처럼, 엘리자베스 1세처럼 결이 굵은 통치자이면 좋겠다. 그러면서 국민의 사랑도 듬뿍 받는 대통령이면 좋겠다. 특히 평생 독신을 고수한 엘리자베스 1세는 박 당선인이 롤 모델로 꼽은 인물이다. 조국을 부국강병으로 이끈 여왕의 업적이 박 당선인의 눈길을 끈 모양이다.
겉으론 화려했지만 여왕이 짊어진 짐은 무거웠다. "왕관은 남이 쓴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영광스러울 뿐 직접 써보면 그다지 즐겁지 않다.
" 그런 여왕의 노고를 영국인들은 아메리카 신대륙의 땅을 '버지니아'로 명명하며 칭송했다.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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