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랜스 암스트롱의 추락/윤재준 국제부장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1.22 17:13

수정 2013.01.22 17:13

[데스크칼럼] 랜스 암스트롱의 추락/윤재준 국제부장

미국의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암스트롱은 암을 극복한 후 프랑스에서 21일간 3200㎞를 달리는 사이클 대회 투르드프랑스를 일곱 차례 우승하면서 인간승리의 감동을 보여준 사람이다.

그동안 암스트롱의 금지약물 사용에 대한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그는 수차례에 걸쳐 완강히 부인했으며 여론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미국 반도핑기구(USADA)는 공개한 보고서에서 암스트롱이 "스포츠 사상 가장 정교하고 조직적으로 약물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국제사이클연맹(ICU)도 투르드프랑스 우승 타이틀을 모두 박탈하고 영구 출전금지령을 내렸다.

스포츠용품 업체 나이키를 비롯한 스폰서들은 그에 대한 후원을 중단했으며 받은 대회 상금과 각종 보너스, 후원금의 반환 요구도 늘고 있다.

암스트롱은 자신이 이끌던 암퇴치기금 재단 '리브스트롱(Livestrong)'에도 손을 뗐다.

이처럼 과거에 부인했던 것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암스트롱은 지난주 미국의 유명 토크쇼 호스트 오프라 윈프리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가진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금지 약물 사용을 시인했지만 솔직하지 못했다는 등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암스트롱의 사이클계 영구 제명 후 그의 과거 행적들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밝았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암스트롱이 과거 동료선수를 비롯해 의혹을 제기했던 사람들을 협박했으며 이들은 후원 중단 등으로 경제적으로 큰 손실을 입어야 했다. 암스트롱의 이미지는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뻔뻔한 사람, 심지어는 범죄자로 바뀌었다.

암스트롱의 금지약물 사용 사실에 실망감이 큰 것은 그가 암퇴치를 위한 재단 '리브스트롱'을 통해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해줬기 때문이다. 이 재단은 암퇴치 연구를 위해 17년간 무려 5억달러를 모금했다. 암스트롱이 10년 넘게 금지 약물 사용을 부인해 정직하지 못했지만 암으로부터 많은 생명을 구하지 않았느냐고 하는 사람 또한 많다.

스포츠계에서는 금지 약물 복용이 심상치 않게 발각되곤 한다. 최근 미국 야구명예전당 투표에서는 지난 1996년 이후 처음으로 단 한 명도 헌액되지 못했다. 지난 1990년대부터 메이저리그에서 스테로이드 같은 금지약물 사용이 만연했다는 것에 대한 불신감이 작용한 것이다.

암스트롱은 투르드프랑스 대회에서 수백차례의 약물검사를 무사히 통과했다. 그 덕에 일곱 차례나 우승하면서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국제 사이클계에서는 금지 약물 사용이 널리 퍼졌다는 인식이 크다. 암스트롱의 변명은 남들이 다 하니 자기도 했다는 것이다. 만약 암스트롱이 좀 더 일찍 금지 약물 사용 사실을 시인했더라면 용서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여론도 있다.

미국 사회에서는 '두번째 기회(second chance)'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한 번 거짓말이나 실수를 한 사람들을 용서해주고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난 1990년대 초 월가 부정 혐의로 연방 교도소에 수감됐던 '정크본드의 왕' 마이클 밀켄은 석방 후 의학연구재단을 설립해 사회에 기여했다. 전립선암을 겪었던 밀켄을 지난 2004년 경제전문지 포천은 "의학을 바꿔놓은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반면 암스트롱에게 두 번째 기회는 쉽게 올 것 같지 않다.

jjyoo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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