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판결문 공개 제대로 하자/정훈식 사회부장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2.14 17:02

수정 2013.02.14 17:02

[데스크칼럼] 판결문 공개 제대로 하자/정훈식 사회부장

재판 결과인 판결문 공개를 놓고 사법 당국이 목하 고민 중이다.

국민의 알권리 충족을 위해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지난 1월 1일부터 형사사건 판결문은 공개에 들어갔고 민사사건은 오는 2015년부터 열람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판결문 공개 원칙이 정해져 있는데 왜 뒷북이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게다.

문제는 실효성과 부작용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로 되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먼저 실효성이다. 판결문은 법원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그런데 자잘한 일반적인 사건은 관심 없고 사회적으로 센세이셔널한 관심사에 대해서만 관심이 쏠린다. 이렇다 보니 공개된 판결문이 제 목적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데 비해 판결문 자체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데 많은 행정력과 기회비용이 소모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판결문의 원문이 공개되더라도 국민이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법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직까지 일제강점기 때의 문구나 한자어, 법조계에서 많이 쓰이는 관용어 등의 표현이 너무 많다. 판결기사를 쓰는 기자들마저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가 쓰일 정도다. 해태하다(게을리 하다)는 기본이고, 가사(가령), 주문(선고문), 소외(訴外.소송 당사자가 아닌 경우), 월임료(월세), 경료하였다(마쳤다), 인용한다(받아들인다), 형해화되고(있으나마나하게 되고), 설시하다(설명하다),∼라고 할 것이다, ∼라고 보지 못할 바 아니라 할 것이다 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다.

희대의 엽기적인 살인 사건인 경기 수원의 20대 여성 살해범 오원춘의 경우와 같이 범죄 내용이 매우 잔인한 경우에 이를 낱낱이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판결문 공개를 통해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다. 그렇지만 범죄 자체가 너무 잔혹해 국민에게 혐오심을 주고 나아가 모방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정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큰 상황이다. 그런데도 국민 알권리라는 미명 아래 내용을 모두 공개해야 할까.

제도적인 문제로 판결문 자체를 아예 들여다볼 수 없는 것도 있다. 소송가액이 2000만원 이하인 민사 소액재판은 판결문 작성 자체가 해당 재판관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재판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취지에서다.

그런데 민사 소액재판의 경우 전체 민사 소송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데다 대부분 국민과 직결된 문제로 소송 당사자들이 판결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래서 해당 재판 결과에서 패소자는 상급심에 호소하고 싶어도 제대로 호소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대법원에서는 그동안 사법연수원생을 곧바로 판사로 임용하는 기존 방식을 전면 폐지하고 최근 15년 이상 법조 경력자를 대상으로 소액전담법관을 1심 법원에 배치해 '민사소액 사건'의 신뢰도를 높이는 등으로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겠다고 하지만 소송 당사자들의 불만이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전반적으로 판결문 공개에 대한 대비책이 아직 허술하다.


사법 당국은 판결문 공개에 맞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법률용어를 정비해야 한다. 더불어 국민의 알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되 공개 효과보다 부작용이 큰 판결문의 경우 내용 중 일부분에 대한 공개를 제한하는 등 탄력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판결문이 공개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알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도록 인력 충원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면 이 또한 제대로 해야 한다.

poongnu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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