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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걸음] 국회는 누구를 위해 싸우나/정보미디어부 부장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2.27 17:06

수정 2013.02.27 17:06

[이구순의 느린걸음] 국회는 누구를 위해 싸우나/정보미디어부 부장

아이 하나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엄마가 솔로몬 왕 앞에 섰다. 솔로몬 왕은 아이를 둘로 갈라 나눠 가지라고 했다. 그랬더니 두 엄마의 싸움은 점점 도를 더해간다. 한 엄마는 아이를 반으로 가르는 대신 팔 다리는 자신이 가져야 한다고 우기고, 다른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오른 팔은 반드시 자신이 가져야 한다고 우기고 있다. 두 엄마 모두 둘로 갈려 죽을 수밖에 없는 아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아이의 몸뚱이를 조금 더 차지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성경에 나온 얘기대로라면 친엄마는 아이가 둘로 갈라져 죽기를 바리지 않고 차라리 아이를 다른 엄마에게 양보하는 아름다운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친엄마의 아름다운 모정이 없다. 아이가 죽거나 살거나에는 통 관심이 없다. 죽은 아이라도 몸뚱이를 조금 더 차지하는 데만 관심이 쏠려 있다.

최근 정부조직개편을 둘러싸고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정책 기능 분리를 놓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여야의 모습이 두 엄마와 너무 흡사하다. 여당은 보도기능이 포함된 방송사 인허가 추천권과 이용자 보호 정책만 규제정책으로 보고, 나머지 방송정책은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야당은 모든 방송사 인허가권은 물론이고 방송용 주파수 관할권과 개인정보 관련 정책까지 규제정책에 포함해 방송통신위원회에 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 싸움이 정부조직법 개정의 발목을 잡은 채 박근혜 정부의 정부구성 전체를 가로막고 있다.

애초부터 방송정책은 규제와 진흥으로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는 구조다. 진흥을 기반에 두지 않는 규제가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과 방송산업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 모바일 시대를 이끌어갈 새 먹을거리다. 이 산업에서 규제정책은 산업 진흥을 위한 것이고, 두 가지가 최적의 하모니를 이룰 때 산업이 발전하고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이익도 극대화된다.

방송은 더 이상 과거처럼 일부 방송사들이 프로그램을 만들면 시청자가 수동적으로 받아서 보기만 하는 단방향 서비스가 아니다. 이미 스마트 기기와 무선인터넷을 타고 모바일 인터넷TV(IPTV)가 전 국민에게 대중화됐고, 방송사 허가를 받지 않고도 전 국민을 열광하게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수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미 국민들은 주파수 없이도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다.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지상파 방송사의 전파를 이용해 시청하는 국민은 채 1%에도 못 미친다. 광고는 이미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다.

이렇게 광속(光速)으로 변화하는 방송산업을 규제만 할 것인가. 방송의 사회 계도적·공익적 의무는 뒤로한 채 무조건 산업만 발전시키는 게 정부의 역할일까?

정부조직개편 논의에서 방송에 대한 논의는 이 상황을 심도있게 고민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규제를 담당하는 방통위와 진흥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어떻게 업무를 연계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만들지, 진흥정책과 규제정책이 상충될 때 조정 역할을 어디에 둘 것인지. 이런 고민을 담아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의 연결방법을 찾아주는 게 국회가 지금 싸워야 하는 대상이 아니냐는 말이다.

불과 5년 전 우리 국민들은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반목하면서 IPTV 도입의 발목을 잡고 있던 현실을 봤었다. 이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라는 통합기구를 만들어 IPTV를 비롯한 방송·통신 융합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지금 여야가 싸우고 있는 모습은 결국 5년 전보다 더 엄격하게 갈라져 있는 규제·진흥 기구를 만들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모습으로는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한국의 ICT는 앞으로 빛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님들이 잠깐 싸움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해 주기 바란다.
정부조직 개편을 놓고 국회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지금 벌이고 있는 싸움이 방송의 산업화와 공익성을 모두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인지, 방송을 죽이는 것인지 말이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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