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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 걸음] KT의 정체가 헷갈린다/정보미디어부 부장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4.10 16:51

수정 2013.04.10 16:51

[이구순의 느린 걸음] KT의 정체가 헷갈린다/정보미디어부 부장

KT라는 회사가 있다.

시골 어르신 사이에는 아직 한국통신이라고, 전화국이라고, 나라가 운영하는 전화회사라고 설명해야 더 익숙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통신회사다.

11년 전부터 정부 지분은 한 푼도 없는 완전한 민간 회사이고 심지어 경영권은 없지만 외국인이 대주주인 회사지만 여전히 어르신들은 정부가 운영하는 전화회사로 인식하는 등 정체가 헷갈리는 회사다.

어르신들만 헷갈리는 건 아니다. 사실 KT 직원 3만여명은 더 헷갈리고 정부도 여전히 헷갈려하는 회사다.

KT를 둘러싼 혼란이 극대화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 문제다. 사실 지난해 3월 3년 임기를 마친 이석채 회장이 연임을 결정하면서부터 혼란은 시작됐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기존 CEO가 연임하겠다고 나서는 게 맞느냐"는 소리가 있었다.

결국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금융권 CEO들이 속속 교체되면서 KT CEO도 곧 바뀔 것이라는 뒷담화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이달 말이 될 것이라는 구체적 시기도 들려온다.

현직 이 회장은 여러 송사에 얽혀 있고, 이 회장 임기 중 직원들의 불상사도 여럿 있었다.

이 회장의 진퇴 문제는 개인사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KT 주변의 호사가들은 하나같이 이 회장 개인 문제라기보다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연임을 결정한 게 잘못이라거나, 전 정권에서 임명됐으면 정권과 함께 떠나야 한다는 뒷말을 더 신빙성 있게 내놓는다.

정부 지분 한 푼 없는 KT의 CEO가 대통령 선거, 새 정부와 정말 관계가 있는 걸까?

공교롭게도 5년 전 사건이 겹쳐진다. 당시 KT CEO도 대통령 선거를 한 해 앞두고 연임을 결정했었다. 그 CEO는 새 대통령이 취임한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개인비리 문제로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는 현재 이 회장이 CEO로 취임했다. 당시 소문에는 이 회장이 당시 새 대통령을 도왔던 어떤 정치계파와 인연이 있다거니, 어떤 계파의 몫으로 취임이 결정됐다거나 하는 소문이 무성했다.

결국 10년째, 대통령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똑같은 CEO 문제가 KT를 흔들고 있는 셈이다. KT 내부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CEO들은 들어서면서 KT의 색깔을 바꾸는 데 팔을 걷어붙인다. 지난 5년 동안 KT는 과거의 색깔을 벗겠다며 사실상 회사 이름까지 바꿔놨다. KT 앞에 '올레'라는 국적 불명의 이름을 붙여놓고 KT를 지우느라 갖은 애를 썼다. 과거에 KT를 이끌던 KT 중견 임원들은 이제 찾아볼 수도 없다. KT 직원들은 "올레KT가 원래 KT를 다 몰아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한다. 그러니 국내 최고의 통신회사 KT는 내용적으로 5년 된 회사나 다름없다.

KT의 정체를 제일 헷갈려하는 것은 정부가 아닐까 싶다.

대통령 바뀔 때 같이 CEO가 교체되는 회사, 새 CEO는 또 정권과 가까운 누군가 낙점되는 회사…. 그런데도 경영하는 과정에서는 정부 누구도 경영의 잘잘못을 따져주지 않고 방치하는 회사로.

정부가 KT의 정체를 헷갈려하니 KT 내부나 통신업계는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KT CEO 자리를 놓고 혼란이 극대화된다. 새 정부에서는 이 혼란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KT의 혼란은 단순히 한 회사의 혼란이 아니라 국내 통신시장 전체의 혼란으로 파급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CEO가 KT에 또 어떤 다른 색깔을 입힐지 예측할 수 없으니….

자판을 두드리다 열 번도 넘게 지우고 다시 쓴다. 혹시나 이 칼럼이 특정 인물에 대한 변명이나 두둔으로 보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래도 헷갈리는 질문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낸다.

cafe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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