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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미스터 월스트리트/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파생상품시장본부장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5.27 16:38

수정 2013.05.27 16:38

[fn논단] 미스터 월스트리트/이호철 한국거래소 부이사장·파생상품시장본부장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고위 공직자의 산실로 유명하다. 재무장관만 해도 빌 클린턴 정부의 로버트 루빈이나 조지 W 부시 정부의 헨리 폴슨 등이 모두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 출신이다. 그 밖에도 개리 겐슬러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위원장,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 마크 카니 차기 영국 중앙은행 총재 등이 각지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어느 나라나 고위 공직자는 엄격한 잣대가 요구된다. 그래서 적합한 인재를 찾는 일은 매우 어려운데 골드만삭스는 시장을 잘 알면서도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재를 끊임없이 배출해 냈다. 이런 전통은 와인버그에 의해 만들어졌다.


시드니 와인버그는 월가 금융인의 자세와 역할모델을 확립, '미스터 월스트리트'로 불렸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골드만삭스에 사환 보조로 들어온 그는 최고경영자에 올라 회사를 정상에 올려놓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의 출세 배경은 성실성과 일에 대한 열정이다. 뉴욕시 주류판매상의 11형제 중 한 명으로 태어난 와인버그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15세 때 월스트리트의 마천루에 올라가 꼭대기 층부터 모든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며 일자리를 물어 내려오다가 골드만삭스의 보조 사환으로 채용됐다. 그가 처음 맡은 것은 간부들의 외투와 구두의 먼지를 떨어내주는 허드렛일이었다. 그러나 이내 성실함이 눈에 띄어 우편물실로 자리를 옮기고 야간대학까지 진학하게 됐다.

그는 대공황으로 부도 위기에 몰린 골드만삭스 자회사의 어려운 청산작업을 처리하면서 1930년 최고경영자에 오르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포드자동차, 제너럴일렉트릭(GE), 시어스로벅, 제너럴 푸드 등 31개사의 사외이사를 지내면서 항상 고객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예컨대 그는 스스로 '이사를 위한 10계명'을 만들어 이사 자리를 지위의 상징이 아닌 진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시어스로벅 이사 때는 집안 집기를 모두 이 회사 상품으로 바꿔 회사 전시장처럼 꾸몄다. 1956년 그는 당시 최대 규모로 포드자동차의 상장을 성공시켰고 어려운 시장 상황 속에서도 거액의 시어스로벅 채권을 성공적으로 완매했다.

이런 활동 덕분에 골드만삭스는 기업금융의 최강자로 우뚝 서게 됐다. 게다가 그는 39년간 최장수 최고경영자를 지냈는데도 지하철로 출근하는 등 검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와인버그는 공직에 대한 봉사에도 힘을 썼다. 그는 전쟁이 나자 기업이 정부를 도와야 한다며 전시생산위원회의 활동에 앞장섰다. 그는 "공직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시민정신이다. 사람들은 국가와 지역사회에서 근무한 뒤에 더 훌륭한 시민이 된다"고 주창했다.

그의 성실성에 반한 존슨 대통령은 그에게 적임자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후 이런 전통이 이어졌다. 그 자신도 러시아 대사직을 제안 받은 적이 있지만 "나는 러시아어를 모른다.
내가 거기 가서 누구하고 말하겠는가"라고 거절했다. 그 대신 와인버그는 기업과 시장을 잘 아는 인재들을 미국 정부의 요직에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1969년 와인버그가 세상을 뜨자 뉴욕타임스지는 1면에 '미스터 월스트리트'의 죽음을 보도하며 애도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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