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발레리나들이 파트너로 지목한 남자 오네긴으로 돌아오다

"운명이고 행운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걸출한 발레리노 로베르토 볼레(38·사진)는 자신의 발레 인생을 이 한 줄로 요약했다.

그는 세계적인 발레리나들이 앞다퉈 파트너로 삼기 원하는 '귀하신 몸'이다.

20대 초반, 실버 길렘과 카를라 프라치 같은 무용수들과 춤췄고, 그 후 지금까지 그가 두 팔로 번쩍 들어올린 발레리나들의 면면은 현대 발레사의 족적과 궤를 같이한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발레 '오네긴'으로 로베르토 볼레가 생애 첫 한국 무대를 갖는다. "대단히 기뻐요. 이 공연을 기다리는 제 팬들이 한국에 많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e메일 인터뷰로 만난 볼레는 작품 '오네긴' 속 주인공 오네긴에서 느껴지는 자신감, 도도함마저 풍겼다. "큰 키, 팔 힘 때문 아닐까요? 좀 더 마른 파트너와 춤추는 것보다 안정감이 느껴지는 거겠죠?" 세기의 발레리나들이 그를 파트너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스스로 분석한 대목에서도 그랬다.

19세기 러시아 문호 푸슈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발레 '오네긴'은 바람둥이 귀족청년 오네긴과 시골 순박한 처녀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오네긴은 타티아나가 보낸 첫사랑 고백 편지를 찢어버리며 그녀의 사랑을 단번에 거절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귀족 부인이 된 타티아나를 본 순간 끓어오르는 사랑의 감정에 무릎을 꿇고 만다. 그를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의 타티아나는 온몸으로 절규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전설의 안무가 존 크랑코의 1965년작으로, 차이콥스키의 처연한 음악이 어우러진 20세기 대표 드라마 발레로 꼽힌다. 국내에선 2009년 UBC에 의해 초연됐다.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오페라 발레 에투왈(최고무용수 직급)이자,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인 볼레가 특히 장기를 발휘해온 장르가 실은 이 드라마 발레다.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카멜리아 레이디'의 아르망, '마농'의 데 그리외 역할을 특별히 선호한다고도 밝혔다. "이 역할들은 클래식한 움직임에 기본을 두고 있지만, 19세기 정통 발레들과는 확실히 다른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위대한 소설이 원작이어서 캐릭터들은 복잡하면서도 흥미만점이에요." 그는 자신을 위해 '오르테우스'를 직접 안무한 존 노이마이어, 함께 여러 작업을 했던 전설의 거장 이리 킬리안의 작품에 대해서도 강한 애정을 표했다.

'오네긴'은 3년 전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마리아 아이슈발트와 올렸던 게 처음이다. 최근엔 ABT와 함께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도 무대를 가졌다. 그는 "오네긴의 열정, 그의 감성적 기질, 그의 강인함 속에 숨겨진 섬세함을 사랑한다"고 했다. "1막, 2막에서 삶에 지루함을 느끼는 오네긴이 3막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타티아나의 사랑을 거절한 자신의 실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그 후 현재의 삶이 얼마나 공허해졌는지 깨닫습니다. 굉장한 내면 연기가 필요해요. 그게 매력적입니다. 무용수의 최고 덕목은 감정 전달력이라고 봐요. 무용수는 예술가이지 운동선수가 아닙니다."

그의 인생 시계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처음과 끝, 모두가 발레다. "유니세프 등 외부 활동도 있지만, 삶의 집중도를 따지면 거의 완벽하게 발레에 맞춰져 있어요. 발레 외의 삶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이탈리아에서 3년 전부터 여름이면 '로베르토 볼레와 친구들의 갈라' 공연을 선보여 왔다.
올해는 처음으로 뉴욕, 상하이에서도 이 공연을 올린다.

그의 이번 '오네긴' 상대역 타티아나는 지난해 ABT 수석무용수로 전격 승급돼 화제를 모았던 서희가 맡는다. 두 사람의 무대는 오는 7월 7일과 8일 두 번 있다. 전체 공연은 오는 7월 6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만∼10만원. 1544-1555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