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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릴레이 인터뷰] (6)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6.25 03:30

수정 2013.06.25 03:30

사진=서동일 기자
사진=서동일 기자

아마 그 순간, 대한민국 3040대 남성들이 열렬히 지지했을 법했다. 여성가족부 안티족들을 한순간에 '팬심'으로 뒤흔들 말이었는지 모른다.

"남성의 육아휴직 문제는 우리가 해야 할 톱 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계속 (추진)해야죠."

헌정 사상 첫 여성대통령의 비여성계 출신 여성가족부 장관, '조윤선.' 초기엔 여성계로부터 반발도 받았다.

취임 100일 남짓, 윤창중 사건부터 군 가산점 논란 등 정국을 뒤흔들 사건사고도 쉴 새 없이 터졌다.

그러는사이 직장어린이집 대책과 성폭력대책이 만들어졌으며, 기존 외교부에만 맡겨졌던 위안부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가 하면 감정노동자 보호 방안 착수 등 여성가족부의 역할이 한층 강화됐다.



각종 사건들에도 제 페이스를 잃지 않아서일까. 전보다 여성가족부의 활동 반경이 훨씬 넓어지고 깊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조 장관의 표현을 빌리자면 "꿈 같은 일"도 있었다. 조 장관의 100일 꿈과 같은 이야기들, 그 막후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대담 = 조석장 정치경제부장

지난 21일 서울 청계천로 여성가족부 청사. 인터뷰 시간에 맞춰 조윤선 장관이 푸른색 재킷 차림의 화사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솔직한 듯 자신감 넘치는 대화가 이어졌다.

"고용률 70% 로드맵에서 협의가 안된 게 바로 남성 육아휴직 문제였습니다. 결국은 예산의 출처 등 재원 문제였죠." 지난달 4일 정부는 박근혜정부의 야심찬 고용률 70% 정책을 발표했다. '언제쯤이면 아빠들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남성들도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육아가 공동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될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엔 국민들이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달려있는데, 호응만 해주시면 바뀌는 건 시간문제입니다"라고 답했다.

최근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의에 참석했다가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프랑스 얘기다. 현재 프랑스에선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지 않으면 부부 모두 그 휴가가 없어지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그렇게 해서라도 여성들의 육아휴직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또 육아가 엄마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재인식시킬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조윤선 장관

장관 취임 100일 남짓, 시간을 100일 전으로 돌려보고 싶었다. 첫 여성대통령의 첫 여성가족부 장관, 대통령은 그에게 과연 어떤 임무를 맡겼을까.

"인수위 때 대통령께서 물으셨어요. 여성문화분과위 보고 보셨죠? 어떻게 보셨어요?" 박 대통령이 당시 인수위 대변인이었던 그를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염두에 두고 물은 것이다. "전 부처에 그 업무가 걸리지 않은 것이 없고, 모든 부처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조 대변인은 아이를 키우면서 일해오지 않았습니까. 조 대변인은 일을 깊이 파고드는 습성이 있는데, 기존의 관성대로 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일해주세요. 제가 얼마나 여성가족정책을 중시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주문은 간결하면서도 임팩트가 있었다.

두번째 사건은 정부 출범 후 첫 국무회의 때 일어났다. "첫 국무회의 때였습니다. 대통령께서 여성가족부 장관은 여성의 결혼부터, 임신, 출산, 육아, 교육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거쳐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오십시오." 대통령의 한층 강한 주문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는지, 그날 밤 또 꿈을 꿨습니다. 학력고사 전날 전과목 시험 공부가 안된 꿈이었습니다. 그전엔 수학 한 과목만 안되는 꿈을 꿨는데…." 학창시절 손꼽히는 우등생이었던 조 장관의 학력고사 꿈은 유명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밤새 고3때나 사법시험 전날로 돌아간다고 한다.

■첫 성과물 '직장어린이집'…"꿈만 같다"

그런데 요즘엔 다른 꿈을 꾼다고 했다. 취임 초기 마냥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이루어져 "꿈만 같다"는 것. 첫 성과는 '직장어린이집 정책'이다. 정부의 지원과 규제 완화로 현행 39%에 불과한 직장어린이집 의무 사업장의 어린이집 설치비율을 2017년까지 70% 수준으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직장어린이집 반응이 폭발적입니다. 직장어린이집 정책, 처음엔 꿈이었는데 그게 되는 걸 보니 다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감이 묻어났다.

"어떤 한 제도가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걸 해결해 줄 순 없지만 마음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건 어쩌면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전에 어느 외국영화에서 엄마가 퇴근하면서 회사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도 저런 날이 올까 부러워했는데…그걸 정말 할 수 있게 돼서 제일 좋습니다. "

조 장관이 "꿈같다"고 한 건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각 부처들을 상대로 지난한 설득 작업을 펼쳤을 게 그려졌다. "제일 어려웠던 점은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도 경제개발해서 잘 살았는데 왜 이제 와서 이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들이었습니다. 대부분 의사결정자들이 남성들이다보니 '뭐가 문제인지',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지'라는 생각들이었습니다." 30대 그 누구 못지않게 치열하게 일과 육아를 병행했던 그에게 소위 칼자루를 쥔 경제 부처들을 설득하는 작업은 또 다른 현실이었다.

박근혜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른 점은 단순히 여성일자리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전체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선 여성고용률을 높여야 한다는 논리를 구사하고 있는 점이다. 칼자루를 쥔 남성 정책결정자들이 물러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박근혜정부 여성고용정책은 여성인권적인 측면보다는 지속가능한 경제 핵심이슈라는 논리로 제시되고 있다.

"여성대통령이 나왔다는 건 여성문제 개선에 촉매역할을 해야 해요. 이번 대통령 때 개선되지 않으면 언제 이뤄지겠어요. 이번에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 시작하겠습니까."

■경제관계장관회의 남성사회와 소통

경제관계장관회의는 부처 중에서도 힘센 부처들의 모임이다. 소위 돈을 만지는 곳들로 부처들의 부처라고 불린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주도한다.

"이번 정부를 시작하고 경제관계장관회의에 가보니 '여기가 바로 내가 부처들의 협조를 구할 수 있는 곳이구나' 했습니다. 꼭 가야 하는 자리구나 싶어서 계속 좀 불러달라고 했죠." 조 장관 이전의 여가부 장관들은 경제장관회의에서 불러줄 때만 간헐적으로 참석했다. 막강한 예산과 경제 제도, 산업현장에 연결된 경제부처들과 소통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 장관 취임 이후 여기서 탄생한 게 직장어린이집, 성인지예산 확대 등이다. 지금은 사실상 정례멤버로 열심히 출석하고 있다.

■약자를 위한 시스템

여성가족부인데 여성은 보이는데 가족이 안 보인다는 아픈 지적을 던졌다. 지금까지의 여성가족부에 대한 사람들 뇌리에 잡힌 잔상이기도 했다. "여성정책조정회의 밑에 여성의 대표성 태스크포스(TF), 일가정 양육 TF가 있죠. TF의 어젠다를 공개하긴 어렵지만 어마어마하게 많은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 제가 가는 현장의 100%는 아니고 99%는 취약계층이 있는 곳들이에요. 성폭력피해자, 가출청소년, 다문화가족, 미혼모가족. 이 모든 게 가족정책의 대상입니다." 웃음 띤 답변으로 대응했다. 이번 인터뷰 내내 조 장관으로부터 수차례 들은 말은 '시스템'이었다. 시스템을 바꾸고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얘기는 한시간 남짓 진행된 얘기 곳곳에 들어가 있었다. 그 자체가 과거 체제 속에서 고되게 살아왔기에, 두 딸들에겐 다른 세상을 물려주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시스템 중 하나는 '육아휴직모델'이다. '육아휴직을 강제적으로 정착시킬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던질 참이었는데, 생각해 볼 만한 답변으로 그가 먼저 선수를 쳤다. "해마다 31만명의 여성이 직장을 떠납니다. 그 31만명만 5년 동안 유지해도 경제활동참가율이 9%포인트가 올라갑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니 육아 때문입니다. 육아 휴직에 대한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게 필요한데 출산휴가를 다녀온 뒤 회사에 미안해서 말 못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육아 휴직을 가겠다는 게 아니고, 육아휴직 약 1년 전에 시간을 두고 인사관리자와의 상담을 통해 '언제부터 언제까지 육아휴직을 갈 거다'라고 사전에 얘길 해주는 거죠. 그럼 회사에선 내년에 몇 명이 더 필요한지 인사기획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회사도 미리 준비할 수 있죠. 소소하지만 인사관리 노하우로 정착 확산되도록 하는 걸 준비하고 있습니다.

■침묵했던 이유, 제도로 답했다

이번엔 답하기 곤란해 보이는 질문을 던졌다. "왜 윤창중 사태에 여성가족부는 침묵했습니까."

조금 전까지 질문하기가 무섭게 대답이 나왔던 것과 달리 조 장관에게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거론하는 순간 뭘 하더라도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가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너무 기가 막힌 피해였는데, 그게 구구절절 설명을 하면, 또 피해가 갈 거예요." 성범죄 사건 특성상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정신적 피해를 설명한 것이다. 말이 이어졌다. "그 사건 당시 두 가지를 (해야겠다고)생각했습니다. 인식을 바꾸도록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또 그런 일이 있을 때 얼마나 무관용으로 엄단해야 하는가." 엄단이라는 부분에선 어조가 올라갔다.

"엄단에 대해선 오늘 발표했습니다." 마침 이날은 여성가족부가 성폭력종합대책을 발표한 날이다.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등은 공직자가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그 정도가 약해도 고의성이 인정되면 파면에 처해질 수 있게 공직자 징계기준을 변경했다. "(공직자 성범죄에 대해)일체 봐주는게 없다는 거죠. 안전행정부와 얘기해서 공무원의 경우 파면으로 결정했습니다."

"윤창중 사태가 계기가 된 거죠? 오늘 제도로 (왜 침묵했는지)그 답이 나왔다고 보면 될까요.(기자)"

"이 제도가 나올 때까지 관련 부처에 굉장히 세게 얘기했습니다. 이런 걸로 고쳐진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정말 엄청나게 세게 한달간 얘기했어요. 그래서 공직자 '파면'이 나왔어요. 안 그랬으면 파면제도가 어떻게 나왔겠어요."

다시 한번 조 장관이 답변하기 곤란해할 질문을 던졌다.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군가산점 재도입 문제다. "사회적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부분이죠. 결론적으론 국민들이 군필자에 대해 잘했다라고 할 만한 예우를 갖춰주는 게 그 해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리=ehcho@fnnews.com 조은효기자

[창간 13주년 릴레이 인터뷰] (6)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조윤선 장관

경제발전에 한참 못 미치는 우리 사회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놓고 "여전히 산 정상엔 만년설이 있다"고 말하는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1966년생으로 세화여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사법시험 합격 후 김앤장 첫 여성변호사, 씨티은행 부행장을 거쳐 2002년 이회창 후보 선대위 공동대변인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면서 이번 정부 첫 여성가족부 장관에 올랐다.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 '문화가 답이다'란 책을 발간할 정도로 문화예술에도 조예가 깊다. 팔방미인인 그, 시쳇말로 대한민국 '엄친딸'로 불리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 표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30대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30대 엄마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을 거예요. 여성이 별로 없는 직장에서 일하다보니, 내가 잘하지 않으면 이제 여성을 안 뽑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일했다"고 말한다.

첫 여성대통령의 첫 여성가족부, 조 장관 취임 이후 여성가족부 내부에선 "100만년 만에 될 듯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정권 초마다 폐지론이 일어 설움을 받았던 미니부처가 최근 달라졌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직장어린이집 대책, 성폭력종합대책 등 굵직한 정책들이 발표되고 있으며, 여성인재아카데미 등 중장기 체계적인 정책들이 속속 추진되고 있다.

여성 대통령의 지지와 지원, 조 장관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여성가족부 내부에서 일할 맛이 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 중 직장어린이집 대책이나 육아휴직제 개선모델 등은 2040 직장맘들이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다. 조 장관은 이번 인터뷰 말미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갈 30대 여성들을 향해 작은 메시지를 던졌다.

"결혼 안한 30대들이나 여대생을 만나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미리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지리산 종주를 하려고 매표소에서 꼭대기를 보면 길이 있을까 싶은데, 가보면 길이 있고, 오가는 사람들도 길을 알려주죠. 일단 시작하면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같은 후배들이 진짜 걱정 없이 애 키우도록 하는 게 나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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