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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순의 느린걸음] KT가 수상하다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7.09 16:34

수정 2014.11.05 11:24

KT가 수상하다.

최근 KT는 홍사덕, 김병호, 김종인 등 신문 정치면에서 주로 이름을 봤던 인사들을 줄줄이 경영고문으로 영입했다. 내달 진행될 주파수 경매에 대해서는 노조가 나서서 대대적인 반대시위를 하고 있다.

KT의 경영고문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자리인지, 연봉을 얼마나 받는 자리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으니 알 수 없다. 그러나 신문 정치면에 등장하던 그 인사들이 일반적인 경영 잣대에 맞춰 KT의 경영자문을 성실히 해낼 적임자라고는 도무지 설득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KT직원들이 잇따라 과로사로 쓰러졌을 때나 유서를 남기며 자살을 통해 KT의 노무관리 문제점을 지적할 때 좀체 나서지 않던 KT 노조가 주파수 경매 문제에 대대적인 집회를 벌이는 모습도 KT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역시 순수한 노조활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KT가 경영을 정치셈법으로 풀려는 것이 아닌지 수상쩍게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소위 현직 대통령과 가깝기로 정평이 난 인사들을 줄줄이 경영고문으로 들인 것. 노조가 나서 정부에 대한 반감표시인지, 정부가 훗날 받을 특혜시비를 무마해주는 사전 포석인지 모를 떠들썩한 이벤트를 벌이는 것. 일반적인 기업경영이 아니라 정치적 계산이 들어간 정치활동처럼 보인다.

사실 돌이켜보면 KT는 이런 정치적 계산에 집중하면서 정상적인 경영활동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게 아닌가 의심도 든다.

시계바늘을 5년만 뒤로 돌려보면 생각은 더 명료해진다. 5년 전 KT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경영고문부터 정식 임원까지 줄줄이 받아들였다. 그 사람들이 KT에 들어가 주로 했던 활동이 대통령 측근이라는 '보이지 않는 명함'을 들고 정부, 청와대, 국회 같은 요로에 KT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시장에서 경쟁하고 더 나은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적었다. 굳이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죽을 힘을 다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외부에서 영입한 힘 있는 분들이 KT가 시장에서 원하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까?

5년이 지난 지금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차고 앉아있던 자리는 하나 둘 현직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로 바뀌고 있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것은 여전히 일반적인 경영활동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KT가 최근 2~3년간 소비자들이 "옳지 이거다!"하고 손바닥을 칠 만한 참신한 정보통신기술(ICT) 상품을 만들어낸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일을 위해 경영고문을 들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KT는 국내 최고의 통신사업자다. 우리나라 ICT 산업의 맏형이다. 지난 2~3년간 ICT 산업 종사자들이 "역시 맏형의 결정은 현명하다"고 찬성할 만한 산업적 판단을 내놓은 것이 있는가 곰곰이 돌이켜보게 된다.

'맏형'이 본연의 경영보다 정치적 계산을 내세우고 있으니 후발 통신사업자들도 비슷한 모양새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우리나라의 정보통신기술 산업이 안타깝다.

사실 KT의 정치활동 시발점에는 대통령 선거 이후 KT 최고경영자(CEO)의 교체설이 있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도 아닌 KT의 CEO가 바뀌어야 하는 등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KT의 CEO가 경영적 판단을 정치활동으로 풀어나가면서 정치와 KT 경영의 시계를 동기화하는 고리를 스스로 만들고 강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깐만 멈춰서서 고민해줬으면 한다. 대한민국 ICT 산업의 맏형으로서….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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