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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中 ‘반독점 태풍’ 부담 혹은 기회

차상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8.16 17:20

수정 2013.08.16 17:20

[월드리포트] 中 ‘반독점 태풍’ 부담 혹은 기회

지난해 말 시진핑 주석-리커창 총리를 정점으로 한 5세대 지도부가 출범한 이후 중국에 많은 변화가 진행 중이지만 산업 측면에서 두드러진 것 중 하나가 기업들의 반시장적 행위에 대한 고강도 처벌이다.

중국은 지난 2008년 8월에 반독점법을 처음 시행했으며 이후 5년째를 맞은 지난달 말 한층 강화된 개정안을 내놓았다. 국가발전 및 개혁위원회(발개위)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반독점 행보는 연초 벽두부터 나왔고 그 강도는 사상 최고수준이다.

지난 1월 삼성, LG 등 한국기업과 대만 치메이 등 6개 액정모니터 업체들은 가격담합 등의 혐의로 총 3억5300만위안(약 635억원)의 벌금처분을 받았다. 이는 외국기업에 대한 첫 반독점법 적용 처벌 사례로 중국정부의 시장질서 확립정책에 예외가 없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어 2월에는 마오타이, 우량예 등 양대 백주생산업체가 고가전략을 유지해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로 4억4900만위안의 벌금을 맞았다.
제3탄은 지난 7일 6개 분유업체에 대한 6억7000만위안의 사상최대 벌금폭탄 사건으로 시장의 독과점 행위에 대한 선전포고로 여겨졌다. 제4탄이 가격담합을 일삼아온 상하이금장신구협회와 라오펑샹, 예위안 등 5개 유명 귀금속 업체에 지난주 내려진 총 1000만위안대 벌금 철퇴다.

업계와 언론 쪽에서는 고급수입차와 제약업계가 다음 타깃이 될 것이며 아울러 서민생활 민감업종도 줄줄이 당국의 도마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발개위 쪽에서는 서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인 유류, 통신, 자동차, 은행 등의 업종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경쟁당국의 강력한 반시장행위 척결 행보와 관련해 눈여겨볼 것은 반독점 사건에 업종별 단체(협회)가 적잖게 끼어있다는 점이다. 국가공상총국이 조사 중인 12건의 반독점 사건에도 건자재, 토목건설, 보험, 여행업 등 9개의 업종 단체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는 반관반민의 성격을 띠며 정부의 심부름꾼 혹은 대리인 역할을 해왔다. 성장지상주의의 과거 중국에서 협회는 정부 정책의 효율적 집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업계를 주동적으로 이끌어 왔다. 절대 안정이 필요했던 물가부문에서 정부를 대신해 가격조정에 관여해 온 것은 대표적 사례다. 이 때문에 정부도 반독점법을 시행한 지 5년여가 지났지만 시장플레이어들의 반시장적 행위에 대해 상당히 관대했고 특히 협회의 역할에 대해서는 공공연히 묵인해왔다. 중국에서 협회 같은 사회단체가 영리목적의 활동을 하는 것은 형사처벌 대상으로 관련 조례에 명기돼 있지만 적어도 최근까지는 사문화조항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협회와 기업들의 반시장 공모행위에 본격적으로 칼을 댔다는 것은 기존의 낙후된 시장질서를 근원부터 수술해 국제 룰을 적용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무역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중국 내부의 반시장적 행위부터 과감히 수술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국제사회에 보내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지난 1월 한국, 대만 등의 다국적 기업들이 포함된 액정모니터 업계 가격 담합사건이나 반시장행위의 주역으로 업종단체를 계속 도마에 올리는 것도 미국, 유럽을 상대로 국제 기준의 반독점법 집행 의지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이다.

중국 정부는 새 지도부 집권 이후 개방, 경쟁, 시장질서 회복 등을 주요 정책과제로 천명했다.
나아가 소비자와 기업의 합법적 권익보호 및 공평한 시장환경 조성 등을 통해 우량 민영기업을 육성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안착시키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중국 내수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는 우리 기업들로서는 이전에 없던 강력한 규제가 조심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국의 시장 질서나 규범이 한층 빨리 국제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의 반독점 기류에 상당한 기대를 가져볼 만도 하다.

csky@fnnews.com 차상근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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