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월드리포트

[fn논단] 거대담론에 대한 갈증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8.22 03:46

수정 2013.08.22 03:46

[fn논단] 거대담론에 대한 갈증

최근 개봉한 영화 '설국열차'는 한때 이 사회를 지배했던 거대담론을 알레고리화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선택된 자로서의 앞차 사람들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간신히 올라탄 꼬리칸 사람들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술과 고기가 넘쳐나고 권태가 지나쳐 마약에 빠지는 등 호화로운 삶의 극치와 춥고 어둡고 기아에 허덕이다 심지어 동료의 살을 뜯어먹는 극도의 지옥 같은 삶과의 대비. 조금 좋아졌다는 것이 '바퀴벌레를 으깨어 만든 단백질 블록'을 먹게 됐다는 것. 총리 메이슨은 말한다. "신발은 모자가 될 수 없어. 왜냐면 태어날 때부터 서로가 있어야 할 위치가 정해져서 태어났기 때문이지."

드디어 꼬리칸의 반란은 시작되고 파죽지세의 혁명적 기세로 호화로운 앞칸을 한 칸 한 칸 정복하며 마침내 엔진칸에 도착한 반란의 지도자 커티스. 안 그래도 꼬리칸의 성자 길리엄처럼 자기 팔을 잘라 굶주린 사람에게 준 바 없는 커티스의 죄책감에 엔진칸의 지배자 윌포드는 기름을 붓는다. 이 열차가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한 인구 수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꼬리칸의 반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그것에 대해선 꼬리칸의 성자 길리엄도 동의했고 그 결과 우리 측의 희생이 예상 외로 컸지만 어쨌든 적정한 인구조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 이 말은 이 사회의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사업(?)에 반란군 지도자 커티스와 길리엄이 훌륭하게 기여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사회는 웬만한 반격에도 끄떡 않는 자체흡수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연민과 희생과 도덕적 숭고함의 주체들이 결과적으로는 권력 강화에 기여하게 된다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도덕 냉소주의'가 내포돼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이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가 커티스에게 윌포드를 죽이지 말고 아예 열차 밖으로 나가자고 설득한다는 점이다. 남궁민수가 열차 밖을 상상하게 된 이면에는 커티스가 윌포드를 죽이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해도 결국은 그 세계가 윌포드가 만들어 놓은 권력의 세계와 하등의 차이가 없을 것이란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어차피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 철벽 같은 권력과 투쟁하기보다 저 드넓은 설원 위에서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남궁민수가 묻고 그의 딸 요나와 스펜서의 아들 타미가 실행한 그 삶은 그동안의 지긋지긋한 권력 투쟁을 버리고 새롭기 때문에 '춥지만' 기왕의 비생산적인 권력투쟁보다는 훨씬 더 '하얗고 아름다운' 열차 밖의 세상이다. 이와 관련해 한 평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독은 '설국열차' 속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꼬리칸 반란군에 감정을 이입하면 그들이 칸칸이 전진할수록 관객은 손에 땀을 쥐게 될 텐데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꼬리칸 사람들의 고뇌와 절망 그리고 열망 대신에 그것을 대표한 길리엄과 커티스, 에드가만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남궁민수와 윌포드! 다시 말해 정치 엘리트 간의 관계만 다루면서 결론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때 뒷심 부재로 필연적으로 '정치 허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고, 그 허무주의로부터 정치를 떠난 제3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필지의 사실. 그렇지만 양대 권력 사이에서의 설원을 향한 제3의 길 모색이란 모티브는 이제는 그렇게 새로운 것이 아니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이미 기존의 권력 강박관념으로부터 상당 부분 벗어나 다양한 삶의 길들을 마련해 왔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대중의 많은 관심을 끌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450억원이라는 투자 액수와 할리우드 배우들의 출연, 광활한 스케일의 배경, 무엇보다도 봉준호 감독의 명성, 그런 것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대중의 사랑을 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는 아마도 1990년대 이후 너무 빨리 문화의 장에서 지워버린 거대담론에 대한 대중의 갈증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지금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설국열차'가 과연 진보성을 내포하고 있는가 여부에 대한 관객들의 해석상의 논란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