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월드리포트]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08.31 03:06

수정 2013.08.31 03:06

[월드리포트]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지난 28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I have a dream' 연설 5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미국 역사의 대표적인 흑인 인권운동가로 알려진 킹 목사는 지난 1963년 워싱턴에서 "나에겐 꿈이 있다"며 "흑인과 백인 후손들이 함께 다정하게 손을 잡고 푸른 잔디밭을 함께 걸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는 내용의 감명 깊은 연설로 흑인 민권운동에 불을 지핀 바 있다.

이날 50주년 기념행사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빌 클린턴,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등이 참석해 킹 목사의 '꿈'과 민권정신을 되새기고 '자유, 평등, 평화'의 민권이 중단 없이 개선되도록 노력할 것임을 다짐했다.

하지만 요즘 미국을 보고 있으면 50년 전 킹 목사의 '드림' 연설이 말 그대로 단순한 '꿈'이라고 느껴진다.

킹 목사의 연설 이후 지난 50년간 흑인들을 비롯한 유색인종들의 민권이 크게 향상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백인과 흑인들의 빈부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연방 센서스국에 따르면 백인과 흑인의 부의 격차는 1984년 평균 8만5000달러(약 9400만원)였지만 2009년에는 23만6500달러(약 2억6300만원)로 거의 세 배가 늘었다.

백인의 경우 중간 재산 규모는 11만3000달러(약 1억2600만원)에 달한 반면 흑인의 중간 재산은 5700달러(약 634만원)에 불과했다.

참고로 아시아계의 중간 재산은 7만8000달러(약 8700만원)로 흑인들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및 사회연구 전문가들은 미국이 2007년 말부터 경제위기에 처하면서 상류층보다는 흑인들이 많이 포함돼 있는 빈곤층이 크게 타격을 받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의 빈곤층 가운데 백인은 12%를 차지하고 있지만 흑인은 26%로 월등히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킹 목사의 '꿈'이 이뤄졌다고 밝힌 백인은 60%였지만 흑인은 20%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흑백 간의 엇갈린 시선은 최근 플로리다주에서 발생한 17세 흑인소년 트레이번 마틴의 살해 혐의 재판을 통해 명백하게 나타났다.

마틴은 플로리다의 한 고급주택가에서 히스패닉계 백인인 조지 지머먼이 쏜 총을 맞고 숨졌다. 재판의 배심원단은 지머먼의 정당방위를 인정하며 그에게 무죄평결을 내렸다.

평결이 내려지자 흑인사회는 인종차별을 호소하며 미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백인사회의 경우 흑인사회보다는 훨씬 더 냉정한 각도에서 이 사태를 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틴 사건 이후 흑인과 백인이 함께 연루된 범죄 사건의 기사에는 흑백 간의 갈등을 여실하게 드러내는 네티즌들의 공방전이 리플을 통해 열리고 있다. 한 백인 네티즌은 "이 나라에서 흑인의 총격에 의해 백인이 죽거나 다치면 큰 뉴스가 되지 않지만 흑인이 백인이 쏜 총에 맞으면 나라 전체가 광분한다"며 두 인종 간의 갈등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줬다.

지난 2008년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의 당선과 금융위기 발생 이후 미국 사회는 인종으로나 경제, 사상 등을 놓고 확실한 양분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이처럼 흑백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폭동 사태가 또다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은 가운데 사회적인 불안함까지 감수해야 되는 미주 한인들의 어깨가 무겁다.

jjung72@fnnews.com 정지원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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