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통령의 난폭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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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말쯤인가 보다. 그날 같이 자리를 한 사람들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다가 한 로펌 대표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즈음 텍사스주 정부 관계자를 만났는데 그가 "이제 미국은 굉장히 잘될 것이다"라고 호언했다는 거다. 이유를 묻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주 지사로 일할 당시 텍사스주가 아주 번창하고 모든 일이 잘됐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부시는 일을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자신은 정적들과 문제 인사들을 데리고 신나게 잘 놀았고, 그러자 일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텍사스주가 크게 발전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부시는 미국 경제를 어렵게 만든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되는 등 대통령으로서는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후에 이 로펌 대표가 텍사스주 정부 인사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에게 "일전에 한 얘기가 틀린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자 "9·11 사태가 모든 걸 망쳤다. 대테러 전쟁을 벌이느라 이렇게 됐다"고 답했다고 한다. 테러전쟁 벌이느라 부시가 자신의 장기인 '정적들과의 놀기(?)' 솜씨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거다.

비슷한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바로 그다. 지금은 정치비자금 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잘 모르는 경제 등 주요 국정을 전문가들에게 전폭 맡긴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경제는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경제관료로 평가받고 있는 김재익이 맡았다. 그는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된 후 물가안정, 민간자율, 시장개방을 적극 추진했다. 가장 큰 문제는 물가였다. 당시 인플레는 40년간 이어져 온 고질병의 하나였다. 대통령이 김 수석에게 "내가 도와줄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김 수석이 "물가를 잡아주십시오" 하자 전 전대통령은 무모할 정도로 밀어붙여 40년 고질의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경제는 안정 속에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리더십에서 공통점은 큰 방향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일은 전문가들에게 위임했다는 거다. 사실 어떤 조직에서건 수장이 모든 일에 꼬치꼬치 관여하고 통제한다면 아랫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자신의 소신과 실력을 발휘할 여지가 없어진다. 결국 눈치를 보고 시키는 것만 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그 조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도 나서지 않게 되고 조직은 수장 한 사람의 틀에 갇히고 만다. 한 사람의 지식과 능력이 여러 사람의 그것을 어떻게 당해낼 수 있겠나.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 초부터 보여준 리더십은 앞의 두 사람과는 꽤 거리가 있다. 꼼꼼하게 모든 걸 직접 챙기는 스타일에 가깝다. 출범 초기 깜깜이 인사가 그랬고 경제민주화 추진 과정도 대통령이 일일이 챙기고 있다.

대통령의 미세터치의 절정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정부는 새 정권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입법에 올인하다 최근 재계 달래기로 급선회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내각·여당이 과연 대통령과 국정의 큰 방향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느냐다. 실제로는 현기증을 느끼는 듯하다. 모 경제 분야 담당 장관은 두 달 전만 해도 "경제민주화를 강력하고 줄기차게 밀어붙여야 한다. 기업들 이대로 안 된다"고 강하게 외치다 최근 대통령이 기업 쪽 요구에 신경을 쓰자 이젠 기업 목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정신이 없다.
여당은 경제민주화 입법을 놓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대통령의 리더십에 왕도는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큰 방향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제시돼야 하고 장관들과 공무원, 여당이 그 방향을 충분히 공유해야 한다. 적어도 그런 리더십은 발휘돼야 성과가 나올 것 아닌가.

lim648@fnnews.com 산업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