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소문, 기업 잡는 괴물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1.07 16:58

수정 2013.11.07 16:58

[데스크칼럼] 소문, 기업 잡는 괴물

"3D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입니다."

3D.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의미는 3차원 입체영상이다. 3D 영화가 유행하고 3D TV까지 나오면서 이젠 삼척동자라도 3D라면 특수한 안경을 쓰고 보는 입체영상인 줄 안다. 또 다르게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직종, 이른바 더럽고(Dirty), 위험하며(Dangerous), 어려운(Difficult)직업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양그룹이 좌초된 이후 금융권이나 재계에서 '3D'는 공포의 단어가 됐다. 여기에 해당되면 멀쩡한 기업이라도 한순간에 무너지게 생겼다.
맨 첫 자음이 동양그룹과 같은 'ㄷ'이라는 이유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동양과 한묶음이 됐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고 근거도 빈약한 얘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3D가 기업을 잡아먹는 괴물로 둔갑했다. 게다가 이젠 '3H'라는 말까지 등장해 불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3D처럼 '도미노 부도 공포'를 암시하는 말은 경제상황이 좋지 못할 때 또는 특정 산업이 불황일 때마다 독버섯처럼 퍼지는 게 우리 사회에 일상화됐다. 모모 건설사가 부도가 나면 다음 번에는 어떤 회사가 위험하다는 등, 예를 들어 'ㅈ'자로 시작되는 업체들이 어려울 것이라는 등 확인되지도 않고 알기도 어려운 사실들이 저잣거리의 술안주가 돼 떠돈다.

이 말들이 때로는 어떤 기업에는 치명타가 되기도 한다. 기업은 영속성을 전제로 자본과 부채를 끌어들여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속된다는 믿음은 기업이 생존하는 근간이다. 이러한 신뢰가 무너진다면 제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이라도 견딜 수가 없다.

기업의 도미노 부도는 일자리 감소와 가정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지고 국가 경제 전체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입에 올렸던 말이 자기 발등을 찍을 수도 있는 것이다.

동양사태가 터진 뒤 파장이 확산될 우려가 커질 즈음 다행히 금융감독당국이 대책을 내놨다. 채권은행들의 감시하에 두는 기업 수를 늘리겠다는 게 대책의 핵심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주채무계열 선정 기준을 현행 금융권 총신용공여액의 0.1% 이상을 받은 기업에서 0.075% 이상 받은 기업으로 낮췄다. 이로써 금융권 전체로부터 대략 1조2000억원 이상(2012년 말 기준)의 신용여신을 받은 기업들은 은행들의 감시하에 들어가게 됐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기준변경으로 내년부터 현대, 한국타이어, 하이트진로 등의 그룹이 주채무계열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주채무계열 대기업 그룹 중 자금난에 직면해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해야 하는 기업은 아니더라도 향후 재무 상황이 악화될 우려가 있는 대기업 그룹을 관리대상계열로 별도 분리해 채권은행의 감시를 받도록 했다.

이번 조치로 근거 없는 소문들이 더 이상 회자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수많은 직장인과 가족들의 삶의 터전인 직장이 희화화되면서 저잣거리의 술안주가 돼 부도로 내몰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3D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입니다.
" 'ㄷ' 그룹에 소속된 기업에서 삶을 일구고 있는 한 가장의 하소연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yongmin@fnnews.com 김용민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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