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예산안 잔혹사

예산만 생각하면 화가 난다. 새해 예산안은 358조원 규모다. 국민 1인당 세부담은 550만원으로 올해보다 10만원가량 많다. 나도 세금을 냈다. 이 피 같은 돈을 국회에선 어떻게 심사하고 있을까.

놀라지 마시라. 뭐가 바쁜지 내년 예산은 아직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예산은 편성-심의-집행-결산의 라이프 사이클을 갖는다. 2013년 정기국회는 2012년 예산이 잘 집행됐는지 결산하고 2014년 새 예산이 잘 편성됐는지 심의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정쟁에 매달리는 바람에 아직 2012년 결산도 마치지 못했다.

새해 예산안의 법정시한 내 처리는 진작에 글렀다. 헌법 제54조 2항은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늦어도 12월 2일까지 처리하란 얘기다. 오늘부터 주말 반납하고 씨름해도 20일이 채 안 남았다. 법정시한을 지켜도 문제다. 358조원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해치우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저 정쟁 외눈박이 선량들에게 하루 20조원 가까운 돈의 심사를 맡기겠는가.

세금해방일이라는 게 있다. 1년 365일을 꼬박 일한다고 치자. 자기가 번 소득에서 세금을 다 내고 드디어 자기가 쓸 돈을 벌기 시작하는 날이 세금해방일이다. 고려대 김태일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에 따르면 2011년 세금해방일은 3월 21일이다. 1월 1일부터 3월 20일까지 79일 동안 번 돈은 모조리 세금으로 냈다는 뜻이다. 365일 중 79일이면 22%에 해당한다.

이건 약과다. 세금에 국민연금·건강보험료 등 사회보험료를 합치면 입이 떡 벌어진다. 다시 김 교수에 따르면 이럴 경우 2011년 세금해방일은 거의 한 달 뒤인 4월 17일로 늦춰진다. 자기 노동의 거의 30%를 오로지 세금과 준조세를 내는 데 썼다는 얘기다(김태일 저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미국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자 로버트 노직(1938~2002)은 세금을 강제노동이라고 봤다. 수입의 30%를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시간에서 30%를 국가를 위해 바치라고 강제하는 것과 같다는 논리다. 따라서 노직에게 훌륭한 정부란 국방·치안 등 최소한의 역할에 그치는 작은 정부다. 당연히 세금은 적을수록 좋다. 복지를 위한 증세에도 반대다.

노직의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 미국 시인 올리버 웬들 홈스(1809~1894)는 "세금은 우리가 문명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내는 돈"이라고 말했다. 복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라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거부 워런 버핏 같은 이는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한다. 버핏의 주장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렀다. 한국에서도 사회통합을 위한 증세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국회 생각만 하면 세금을 더 내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 국회는 주야장천 정쟁에 여념이 없다. 예산안은 뒷전이다. 보아하니 새해 예산도 12월 31일 자정 직전에 통과되면 다행이다. 올해 예산처럼 해를 넘겨 처리될지도 모른다. 헌정사상 처음 준예산이 편성될 수도 있다. 지역구를 챙기는 쪽지예산도 난무할 공산이 크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내 돈을 선뜻 맡기겠는가.

김태일 교수는 예산을 깡총한 이불에 비유한다. "어깨를 덮으면 발이 차고, 발을 덮으면 어깨가 시리다… 부족한 재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국민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 그것이 좋은 재정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그러면서 국회가 예산의 질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미안하지만 김 교수가 틀렸다. 우리 국회는 아니다. 우리 국회는 예산심사권을 스스로 포기했다. 자기들이 놀멍 쉬멍(놀며 쉬며·제주방언) 버니까 세금 무서운 줄 모르는 모양이다.
국회의원을 선량(選良)으로 부른다. 가려 뽑은 인재란 뜻이다. 그러나 예산안만 보면 선량인지 한량(閑良)인지 헷갈린다. 여의도 국회의원들은 언제 이름값을 하려나.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