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블록버스터의 종말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1.14 16:52

수정 2013.11.14 16:52

[데스크칼럼] 블록버스터의 종말

'비디오 킬드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있었다. 영국의 2인조 뉴웨이브 그룹 버글스가 지난 1979년 발표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았던 노래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전자음의 사용으로 주목받았던 이 노래는 1960~70년대 라디오를 주무대로 활동했던 팝스타들이 영상매체의 출현으로 내리막길을 걷는 현실을 풍자해 눈길을 끌었다. 1981년 미국 음악채널 MTV가 역사적인 첫 방송을 하면서 이 노래를 첫 곡으로 방영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버글스의 노래를 패러디한 '인터넷 킬드 비디오 스토어(Internet Killed the Video Store)'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미국 최대의 비디오·DVD 대여업체 '블록버스터'가 파산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뽑은 이 헤드라인은 라디오 스타를 사지로 내몰았던 비디오(더 정확하게는 비디오테이프)가 이제는 인터넷에 밀려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이달 초 영업장 폐쇄를 결정한 블록버스터는 10여년 전만 해도 대단한 위세를 자랑했다. 미국의 주요 도시마다 길목 좋은 곳에는 블록버스터가 성업을 하고 있었다. 구멍가게 수준의 국내 비디오 대여점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급' 비디오 렌털숍을 미국 전역에 무려 9000여개나 거느리고 있었다. 이들이 보유한 회원수만도 전국적으로 4500만명에 육박했고, 시장에서 평가하는 기업가치도 50억달러(약 5조3000억원·2002년 기준)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1985년 창업한 블록버스터의 전성기는 길게 잡아도 2000년대 초반까지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콘텐츠 구매 서비스가 일반화하면서 블록버스터의 영업이익은 급감했고 결국 지난 2010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듬해 디시네트워크에 매각된 블록버스터는 뒤늦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실시하며 실지 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시대의 흐름과 혁신에서 뒤처져 몰락의 길을 걸었던 코닥이나 야후, 모토로라, 노키아처럼 블록버스터도 쓸쓸한 종말을 맞이한 셈이다.

뉴욕타임스의 헤드라인처럼 한때는 거인과도 같은 존재였던 블록버스터를 쓰러뜨린 것은 지난 1997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신생업체 넷플릭스(Netflix)다. 블록버스터의 사업을 따라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 불과했던 넷플릭스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오프라인에서의 사업을 대폭 줄이고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등에 사업 역량을 집중했다. 단돈 7.99달러를 내면 한 달 내내 자기가 보고싶은 영상 콘텐츠를 PC나 모바일에서 맘껏 즐길 수 있는 넷플릭스의 서비스는 단숨에 미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현재 넷플릭스가 보유하고 있는 유료 가입자 수는 미국 최대의 케이블 방송사인 HBO보다 많은 3000여만명으로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리드 해스팅은 지난 2011년 포천이 선정한 '올해의 기업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에 영원한 강자란 없다.
특히 변화의 속도가 빠른 스마트 시대에는 한순간의 안일함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만이 냉혹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블록버스터의 몰락과 넷플릭스의 부흥이 그런 단순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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