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디플레는 과연 남의 일?

온 세계가 디플레이션 우려로 뒤숭숭하다. 경기회복은 더디기만 하고 잔뜩 움츠러든 소비는 허리를 펼 기미가 없다. 세계 경제를 휘감고 있는 저성장 저물가 소비위축의 질긴 촉수는 떨어져 나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문제점은 미국.일본.영국이 양적완화정책을 실시하고 있고 유럽중앙은행(ECB)이 제로금리 정책을 쓰고 있는 데도 물가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호에서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가들이 물가하락 조짐으로 고민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선 미국의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현재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물가상승률 목표는 2%다. 그러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지난 8월 연율 기준으로 1.2%에 그쳤다. FRB가 경기부양을 지속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차기 의장 지명자인 재닛 옐런은 양적완화 축소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럽, 아시아 등 주요국들의 디플레이션 가능성 때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던 걸 감안하면 큰 변화다.

유로존은 훨씬 위험하다. 이 지역 올 10월 물가상승률은 0.7%다. 지난해 10월의 2.5%와 갭이 크다. 조짐이 심상치 않자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주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0.25%로 낮췄다.

일본은 최근 다시 물가가 하락하고 성장이 둔화되면서 아베 총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의 야심찬 부양책들이 통하지 않고 있어서다. '디플레 탈출'을 내세워 인기를 얻은 아베는 올해 '물가상승률 2%' 목표를 내세웠고 상반기만 해도 이게 통하는 듯했다. 돈을 무제한 푸는 부양책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하고 성장률이 한때 연율로 4%대에 접근한 것.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지난 9월 일본의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0.7%에 그쳤다. 올 3·4분기 성장률도 1.7%까지 다시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과연 디플레 위험에서 비켜서 있는 것일까. 경기지표가 나아지고 있다지만 작금의 소비위축 사태는 너무 심각해서 물가가 상승한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물가상승률은 전기요금, 택시요금 등의 공공요금 인상 러시에도 불구하고 2%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정부의 관리 목표치인 2.5~3%에 한참 못 미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수요부진이 올해 물가상승률을 0.78%나 하락시켰다'면서 디플레 가능성을 지적했다. 내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1.7∼2.3%에 그칠 것으로 예측했다. 더구나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는 2002년 이후 11년 만에 최장기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생산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1.4% 떨어졌다. 지난해 10월(0.5%) 이후 13개월 연속 하락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총수요 부진, 부동산시장 장기침체, 해외직접투자 증가, 생산성 하락 등 우리 경제의 많은 부분이 일본과 닮아 있다고 지적한다.

정말 우려되는 것은 사정이 이런데도 정치권과 정부는 대응은커녕 딴청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회복의 핵심으로 일컬어지는 부동산 시장이 빈사상태인데도 관련 법안엔 먼지만 수북이 쌓이고 있다. 특히 정부는 아예 디플레 우려는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0월호) 관련 배경설명을 통해 "현재의 저물가가 수요 위축에 따른 디플레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무상보육 등 정책적 효과가 소진되면 그 반작용으로 소비자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오히려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걱정하는 멘트까지 내놓고 있다.


모두 희망을 담은 면피성 멘트로 들린다. 솔직히 부디 그들의 말대로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희망대로 잘 됐다면 경제가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lim648@fnnews.com 산업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