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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악마의 후원자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2.02 17:35

수정 2013.12.02 17:35

[fn논단] 악마의 후원자

A사에서 소위 블루오션 전략을 적용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K씨는 시장조사와 상품 개발 아이디어를 발굴해 최종적으로 발표하는 자리에 초청받아 과연 A사가 지향하는 바가 블루오션 전략에 부합한지와 신상품의 시장창조 가능성을 평가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A사에서는 그동안 시장을 석권해 오던 상품 이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신상품이 필요하던 터라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전 임원 및 간부들이 참석한 자리였다. 전략분야에 있어 전문가인 K씨는 아무리 발표 내용을 들어봐도 블루오션 전략에 해당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가능성도 없다고 판단해 좀 듣기 거북하겠지만 솔직한 자신의 의견을 담은 강평을 했다. K씨가 떠나자 A사의 최고경영자는 행사 주관 담당 팀장을 불러서 "왜 그런 형편 없는 사람을 평가위원으로 초빙했느냐"고 질책을 퍼부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K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도 부르지 말라"고 지시를 했다.
그 회사는 자신들이 추진하려던 안대로 상품을 개발해 시장에 출시했다. 그러나 1년 후 그 상품은 국내 어느 매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실패한 상품이 되고 말았다. 물론 아무도 책임 지는 사람은 없었다.

몇 년 전 B사의 요청을 받아 조직 내 갈등 해소를 위해 단위부서(지점)별 워크숍을 진행할 때다. 주말 이틀간 합숙 워크숍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벌 받으러 온 기분으로 냉소적·방어적 태도를 보이더니 게임, 토의 등을 하면서 분위기는 점점 진지해졌다. 어느 정도 마음들이 열려서 부서 내에서 잘되고 있는 점과 개선 필요점을 찾아서 발표를 시키는데, 여러 건설적인 문제 제시와 창조적 대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무리하기 직전에 우리 부서가 더 잘되기 위해서 전 구성원이 부서 내의 3명을 임의로 선정해 그 사람에게 지금처럼 계속 해주기를 바라는 행동(Continue), 지금부터 고치거나 지양했으면 하는 행동(Stop)과 앞으로 새롭게 시도해보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행동(Begin)에 대해 기록한 '사랑과 격려'의 편지를 작성해 서로 교환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때 갑자기 최고 직급자인 부서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한테 보낸 편지는 모두 누가 썼는지 필적 감정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당황스러웠지만 자연스럽게 진행을 유도해 편지들을 모아 해당자에게 전달했는데 결국 그 부서장은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다. 그후 1년 내내 그 지점의 경영평가 결과는 전국 꼴찌였고 명문대학 출신인 그 지점장도 얼마 후 퇴출됐다.

이런 현상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어느 조직에나 흔히 있을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이러한 경향이 있다. 리더의 이런 행동은 뛰어난 인재를 떠나게 하고 사업을 실패로 인도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조엘 바커는 '패러다임 마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패러다임 마비를 예방하기 위해 마음만 먹으면 효과가 큰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자기 조직 내에 리더 자신의 의견에 '무조건 반대자(Devil's Advocate)'를 의도적으로 지정해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마음 놓고 항상 개진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악마 역할을 맡기기에 적합한 사람을 지정해 맡김으로써 귀에 거슬리는 얘기를 일부러 들어야 하는 용기와 지속성이 있으면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다. 더 존경받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 더 인정받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 주변에서 악마를 찾아서 후원자가 돼보자.

정재창 PSI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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