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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정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2.04 17:13

수정 2014.10.31 12:26

[fn논단] ‘정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날 알아보고 내 신상을 샅샅이 알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정보기관의 음모론이 단골 주제인 할리우드 영화에서만 있을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얼굴 인식 애플리케이션(앱)이 초보적인 수준이나 스마트폰에서 이용 가능하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사용자의 사생활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페북의 '좋아요'를 분석해 사생활 가운데 잘 공개되지 않는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취향까지 80%가량 정확하게 맞혔다.

정보사회의 이런 특징을 일부에선 '정보 공산주의(infocommunism)'라고 부르며 경계한다. 이런 정보공산주의 사회는 그러나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그린 독재자 '빅 브러더'가 샅샅이 감시하는 독재사회와 다르다. 무엇보다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정보를 공개했고 수많은 정보를 분석하는 기술이 있기에 기초정보를 가공해 정보를 활용한다.
문제는 과연 정보업체가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가공해 활용할 수 있는가와 이를 적절하게 감독·통제하는 정책당국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국가보안국(NSA) 외주업체에서 일하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지난 6월 전 세계에 걸친 NSA의 도감청을 폭로한 후 이 이슈는 급부상했다. 미국 정부도 뒤늦게나마 정보기관의 업무영역과 적절한 통제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의 소설가인 데이브 이거스는 최근 '더 서클(The Circle)'이라는 소설에서 사생활을 보장하지 않는 반유토피아의 가상사회를 그렸다.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회사인 더 서클에서 근무하게 된 여자 주인공 매 홀랜드는 '사생활은 보호할 이유가 없다'는 이 회사 중역들의 방침에 놀란다. 중역들은 일상생활을 낱낱이 공개하면 의사소통을 도와 우리 생활에 도움을 준다고 여겨 모든 활동을 녹화한다. 이 소설은 곳곳에서 구글을 연상시킨다.

현재 1만명 정도가 '구글 글래스(Google Glass)'를 시제품으로 사용 중이다. 이 제품은 스마트폰보다 더 작지만 사진과 동영상도 찍고 e메일도 보내고 인터넷 검색도 가능하다. 소니나 삼성 등이 시판 중인 스마트 워치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가졌다.

정보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런 제품들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규정한다. 사생활 보호와 개인의 정치적 의견의 비밀유지, 개인 추억 등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인권이다. 그런데 이런 천부적인 권한을 정보업체가 당사자도 모르게 침해하고 있다고 이들은 비판한다.

정보사회에서 정보는 막강한 권력의 원천이다. 정보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견제장치가 있는가가 핵심 이슈다. 그런데 광속으로 발전한 정보사회를 법규나 제도가 아직 따라잡지 못했다.

1890년 코닥 카메라가 처음 시판됐을 때 미국의 한 일간지는 "올여름 바닷가엔 상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아마추어 사진사다"라고 우려했다.
해수욕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아마추어 사진사들이 마구 찍어대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첨단 정보기기들은 더욱더 우리 일상생활을 파고들 것이다.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정보기기가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어 우리를 옭아맨다면? '아름다울 수 없는 구속'이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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