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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평화의 땅, 이어도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2.09 16:41

수정 2013.12.09 16:41

[fn논단] 평화의 땅, 이어도

제주도는 항몽의 마지막 본거지로 삼별초 김통정 장군이 몽골군을 상대로 장렬하게 순국했던 고려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다. 김통정 장군이 저항했던 애월읍 장수물에는 여몽연합군이 삼별초 최후의 거점이었던 항파두성을 공격할 때 그 자신이 성 위에서 뛰어내려 큰 발자국이 파이면서 그곳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러한 전설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만 봐도 제주도민이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가를 잘 알 수 있다.

확실히 제주도는 전설의 고장이다. 제주도만큼 전설이 무궁무진한 곳도 없다. 제주도 작가 현길언의 소설에는 영웅 도래에 대한 신앙적 갈망이 잘 그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 '용마의 꿈'도 그중 하나다.
그 작품에서 새로 부임한 목사는 제주에서 신망 높은 강좌수가 진상용 귤나무를 모두 죽게 만들었다고 하자 그가 자신의 벼슬을 밀어낼 의도를 갖고 있을 거라고 판단, 갖은 수를 써서 그를 죽여버리고 만다. 그러자 마을에는 강좌수의 둘째 아들이 용마를 타고 나타나 슬피 울다가 하늘에서 다시 돌아와 백성들을 구하려 한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아기장수 설화가 결합돼 있는데 결국 제주에서의 설화나 전설이란 수탈과 차별로 점철된 수난의 역사에서 제주도민이 자기 구원의 형식으로 자기들의 체험을 상상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삼별초의 저항도 무위로 끝나고 마침내 원의 지배를 받게 되자 충렬왕 대에 원은 제주에다 매년 공물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공물을 싣던 곳이 지금의 제주 서남쪽 대정의 모슬포였는데 이 공선을 이끌고 가던 대정의 강씨란 사람이 배를 끌고 가서 돌아오지 않자 그의 늙은 아내가 '이어도여, 이어도여'하며 통곡했다는 전설도 그 한 많은 제주의 전설 중 하나다. 이어도에 대한 전설은 이외에도 수많은 변종들이 있는데 그렇지만 아무리 변종이 많다손 치더라도 이어도란 일종의 환상의 섬, 즉 실재하지 않는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그 섬을 본 적이 없고 단지 해녀들에 의해 그들의 남편이나 아들들이 바다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 아마도 이어도로 갔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것뿐이다. 이 환상의 섬, 이어도는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를 통해 대중에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어도가 다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전설의 섬 이어도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에 포함되는 바람에 우리 정부도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이 이어도는 전설의 섬 이어도가 아니라 그 전설에서 이름을 빌려온 바다 속의 암초라 한다. 마라도 서남쪽 149㎞ 지점에 위치해 있고 1900년 영국의 소코트라 호가 이 암초에 부딪혀 소코트라 암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외에도 파랑도라 부르기도 하고 최근 중국 측에서는 쑤옌자오라 부르고 있다 한다. 수중 4.6m 아래에 있어 파고가 10m 정도로 높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고 하니 이 섬을 본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고 하는 이율배반적인 말이 성립할 만도 하다.

우리 시대 음유시인 정태춘의 노래 '떠나가는 배'의 부제는 '이어도'로 돼 있다. 그러니까 그 노래에 등장하는 배는 바로 이어도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거친 바다에 홀로 겨울비에 젖고 찬바람까지 안고서 기어이 그 섬을 찾아 간다. 왜냐하면 그 섬은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평화의 땅'이고 또 남기고 가져갈 그 무엇도 없는 '무욕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 땅은 고은이 그의 시 '이어도'에서 말한 것처럼 제주가 만든 '제주의 꿈'이다.
그 꿈이 간절해서일까. 제주도는 국제적인 도시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제주도는 군사적인 긴장 지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 오랜 제주의 꿈이 최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과 그로 인한 국제적인 군사충돌로 깨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김진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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