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우리 국회에서는 다수결이 왜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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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기가 지나치게 침체해 정부가 지난 상반기 중에 부동산 활성화대책을 발표했다. 이제 올해가 다 가는데 다주택자 중과제도 폐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 관련 법안이 그동안 숱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반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헌법에 따르면 지난 2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됐어야 하지만 이제 겨우 심의가 시작됐다. 최근 국회가 예산안 심의와 관련해 헌법 기간을 지킨 적이 없다. 올 정기국회가 시작된 이래 각종 정쟁으로 아직까지 법안이 한 건도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야당이 국정원 댓글,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감사원장 임명 동의안 등으로 법안 심의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작년에 만든 소위 국회 선진화법으로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회 선진화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정수의 60% 동의가 없으면 국회의장이 본 회의에 법안 등의 직권 상정을 못하도록 했다. 현재 여당인 새누리당은 의석수가 과반수지만 전체 의석의 60%가 안됨으로써 일반 법안을 의장이 직권 상정해 처리할 수 없다.

국회 선진화법의 제정 배경은 국회에서 법안 표결을 둘러싸고 여야 간 몸싸움을 방지하는 데 있다. 그동안 국회에서 몸싸움이 발생한 것은 근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에 의해 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유권자들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여야 모두를 같이 비난하는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무엇을 결정할 때 의견이 엇갈리면 다수결로 정한다. 왜 대한민국 국회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가?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지만 소수가 동의 안 한다고 아무것도 못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유권자가 과반수 의석을 어느 당에 주었을 때에는 그 정당이 책임을 지고 국정운영을 하라고 위임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는 상임위원장을 우리나라처럼 의석 수에 따라 비례배분하지 않고 다수당이 독점한다.

국회 몸싸움도 토론 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마지막 단계로 표결하는 것을 야당이 물리적으로 못하게 함으로써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권자는 몸싸움의 경우 전체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표결을 못하게 방해하는 국회의원을 비난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몸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다수결의 원칙을 부인하고 물리적으로 표결을 봉쇄하는 관행을 묵인하는 것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과거 유신독재 또는 군사정권 시절 정통성이 약한 정부에 맞서 민주화 투쟁하는 과정에서는 물리적 반대가 정당성이 있었다. 당시에는 민주적 절차로는 정권의 불법 부당성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통성 있는 정부이고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시가 완벽하게 보장돼 있으므로 불법적 방법으로 표결을 막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최근 미국 상원에서는 다수당인 민주당이 제안해 고위 공직자 인준 시 허용되던 필리버스터를 못하도록 하는 규칙을 52대 48의 찬성으로 개정했다. 야당인 공화당이 고위공직자 임명을 지연시킨 데 대한 대응책으로 아예 필리버스터를 못하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야당이 극렬투쟁을 했을 터인데 미국은 표결을 통해 개정됐다.

민주주의에서 대화와 타협, 소수의 의견은 존중돼야 하겠지만 소수가 반대하면 아무 일도 못한다는 것은 다수의 의견이 무시되는 것으로서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유권자는 다수당이 다수결로 횡포하다고 생각되면 다음 번 선거에서 심판하면 될 것이다. 법안이 산적해 있는데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국회로 국민생활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국회가 더욱 생산적인 모습으로 변하기를 기대한다.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