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법관의 양심으로 포장된 주관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바탕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다. 개개인이 모두 성장하면서 각자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지게 마련이고 개인의 이러한 가치관은 존중돼야 한다. 법관 역시 사람인지라 무의식적이든 재판을 함에 있어 자신의 출신 환경 그리고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 판사로 근무하던 1983년 독일 연수를 하면서 법관의 출신, 성향과 재판과의 상관관계를 분석, 고찰하는 '법관사회학'이란 학문을 처음 접했다. 재산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판사와 부르주아 판사로 구분하면서 이른바 계급 재판의 논의가 특히 노동쟁의 사건 등 계급적 대립이 현저하게 나타날 수 있는 영역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형사재판에서의 판사의 이념적 성향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 대리투표, 집회신고 범위 밖의 도로 점거, 김일성 묘소 참배 등 사건의 1심 판결에 대해 담당판사를 좌편향 판사라고 보수쪽 언론이 거친 비난을 퍼부었다. 하급심 재판의 실수는 심급구조에 따른 사법의 자기구제에 의해 상급법원에서 시정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진행 중인 형사재판에 대한 언론 보도는 자신이 의도하는 특정 방향으로 상급심 판결에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으므로 판결 비판에 절제와 품위가 아쉬웠다.

재판의 신뢰와 불신을 가르는 분기점에 법관의 양심이 서 있다. 양심이란 양심적 병역거부에서와 같이 개인의 종교적 혹은 주관적 소신 내지 신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재판준칙이 되는 법관의 양심은 의사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와 같이 직업적 덕목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공인의 양심이다. 그래서 헌법은 법관과 국회의원에 대해 특별히 양심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명시적으로 돼 있어 다양한 견해와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널리 파악해 충분한 검토와 교량을 거쳐야 한다. 법관도 마찬가지다.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함은 건전하게 지탱돼야 할 국가에 대한 책무이자 법관의 기본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법관의 양심은 주관적 자의(恣意)나 독단을 벗어나 객관화돼야 하고 집단적 공감성, 보편성을 지녀야 한다. 역대 대법원장의 법관 임명식에서 약방에 감초같이 등장하는 당부가 바로 법관의 양심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 2일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자기 혼자만의 독특한 가치관이나 주관, 신념을 법관이 따라야 할 양심과 혼동해서는 안 되고 얕은 정의감이나 설익은 신조를 양심으로 내세우다가는 오히려 재판의 독립이 저해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관의 양심은 가끔 국가권력이나 세력집단, 여론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빚는다. 유병진 판사가 6·25 전쟁 후 부역자 재판을 하면서 고민했던 모습은 이러한 갈등의 표출이다. 6·25 전쟁이 끝난 후 부역했던 사람은 부역자 처벌법에 의해 사형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에 처하도록 돼 있었는데 유 판사는 거짓말만 하고 먼저 달아난 정부와 피란의 기회조차 빼앗긴 힘없는 백성의 입장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당시 들끓는 사회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부역자들에 대해 무죄나 집행유예를 했다. 유 판사의 대단한 용기가 사회적 심리강제라는 여론의 장애를 극복했던 것이다.

정의의 여신이 흔히 두 눈을 가리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데에서 잘 드러나듯 법관의 결정은 편파성을 띠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 법관도 인간적 한계와 불완전성을 시인하고 정당성의 상대성에 대한 인식하에서 자신의 관점이 누구에 의해 검증돼도 합리적이라 할 수 있도록 비판적 접근과 자기성찰, 자기교정이 필요하다. "재판관은 언젠가 후일 자신이 심판을 받는다"는 경고의 의미로 법관석 위에 '최후의 심판' 그림을 걸어두었다던 서양 재판 역사의 일화를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