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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날계란을 깨 마시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8.05 15:33

수정 2014.08.05 15:33

날계란 하나를 깨 마시고 나는 약속장소로 향했다. 구청에서 하는 '아버지 합창단'에 가입하러 가는 길이다. 이미 전화로 단장님의 허락을 받아놓았다. 퇴직 후 소일거리를 장만해 놓아야 한다. 요리학원도 등록하고 컴퓨터 공부도 시작하고 오랜 세월 가슴에 품어왔던 미술학원도 다닐 것이다.

날계란을 까 먹는 순간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가 생각났다.
목사인 주인공의 큰아버지는 주일날 설교 전에 꼭 날계란을 깨 마시고 강대상에 올랐다. 주인공인 어린 필립에게도 그 모습은 꽤 우스꽝스러웠던 모양이다. 날계란을 마시면 정말 목소리가 좋아지기는 하는 걸까.

구민회관에 들어서니 이미 복도 저 끝에서 노랫소리가 들린다. 강당 문을 살짝 열고 방해가 될까 봐 우선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무리 앞에서 지휘를 하며 나를 흘낏 본 저이가 단장이리라. 그를 중심으로 40여명의 사내가 뒷모습으로 들어본 적 없는 노래를 합창 중이다. 지휘하는 손이 빨라지다가 마음에 안 차는지 스스로 크게 노래를 부른다. 합창이 뚝 멈춘다. 침묵-침묵. 멈췄던 합창이 다시 시작되고 내 귀엔 사내들의 목소리가 좀 커진 듯하다. 또 뭔가가 부족한 듯 지휘자의 팔뚝 힘줄이 곤두서고 호통 치듯 손길이 빨라지는데 갑자기 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듯했지만 못 들은 척 얼른 강당을 빠져나왔다. 차를 타고 밤길을 달리다 보니 회사 근처에 와있다. 옆에 여의도공원이 보인다.

차 안에 멍하니 있으니 다시 강당의 장면 장면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나는 어찌해 그곳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던가? 40여명의 사내들, 머리가 허옇게 세고 어깨가 축 처져 있던 무리. 그들이 부른 노래가 무엇이었든 간에 내게는 '노예들의 합창'일 뿐이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 우울한 색깔의 옷을 걸치고 영혼이 빠져나간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던 그들. 죽음으로 통하는 막다른 길목에 주저앉아 늙음을 넋두리하는 육신들. 그들을 향해 힐난의 춤을 추던 저승사자.

요즘 들어 빈번히 마주치는 영상이 있다. 전철을 타면 노약자석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지려던 나, 거리에서 퇴직한 선배들을 마주치면 불현듯 방향을 돌리던 내 시선. 그뿐이랴, 나를 발견한 젊은 후배들이 슬그머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던 장면들. 오늘 그 충격적 영상들의 클라이맥스를 만나 나는 부랴부랴 강당으로부터 줄달음을 친 것이었다.

그 후 한 달이 지났다. 지금 나는 사무실 밖으로 여의도공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산보하는 사람들, 열심히 조깅하는 사람들, 한쪽에선 촬영하는 무리도 보인다. 옛날 드라마를 찍으러 파고다공원으로 달려가던 일이 생각난다. 극중에 노인 이야기가 나오면 돈 안 주고 엑스트라를 동원할 수 있는 곳이 탑골공원이었다.

그땐 만나는 인물마다 정겨웠다. 그들의 옷차림과 굽은 어깨, 얼굴 위의 주름살과 검버섯, 분장이라는 거짓 없이 인생을 보여주던 값진 흔적들. 그 늙음과 낡음의 증표들이야말로 내 드라마를 살아 있게 해주는 보석이며 빛나는 훈장이라 칭송했었다.

그날 밤 줄행랑은 직업인으로서 얻었던 낡음과 늙음에 대한 지혜와 경애를 내팽개친 도망질이었다. 낭만적 낡음의 클래식, 그 안온과 순리를 망각한 우둔한 자의 배반이었다. 컴퓨터에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클릭하니 'Chan Chan'이 흐른다. 쿠바 할아버지들의 낡은 목소리 속에 삶의 섭리가 있다.


인생의 굴레는 굴레만이 아니다. 나는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 날계란 하나를 꺼낼 것이다.
달걀만 한 작은 세상에 갇혀 삶을 봤던 자, 달걀을 힘껏 깨 마시고 다시 합창단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응진 문화칼럼니스트·드라마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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