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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기업 오너의 형사처벌과 후진적 지배구조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3.12.30 17:22

수정 2013.12.30 17:22

[여의나루] 기업 오너의 형사처벌과 후진적 지배구조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1월 27일 발표한 '교황권고문'에서 규제가 사라진 자본주의를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고 하며 자본주의의 탐욕을 강하게 비판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기업의 탐욕과 오만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불만과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경향이 재벌그룹이나 대기업 오너의 기업범죄에 대한 엄벌 요구로 표출되고 있다.

올해는 유독 재벌총수들의 수난이 심했다. 텔레비전에는 거동이 불편한 그룹 회장이 검찰에서 밤샘조사를 마치고 지친 표정으로 나오는 모습이 가끔 비쳤다. 그룹 오너들의 수사와 공판이 진행되면서 일부 임원들은 본업을 제쳐놓은 채 법원·검찰·로펌으로 출근하고 있고 그룹의 신규 사업투자나 해외사업 수주는 차질을 빚고 있다.

왜 이렇게 대기업 오너나 임원들의 수사와 재판이 줄을 잇고 있나. 한마디로 그 원인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취약한 기업지배구조가 한몫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달 초 새로 취임한 검찰총장은 향후 기업수사의 방향은 핵심혐의 조사에 국한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이뤄졌던 별건수사, 저인망수사, 장기수사의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검찰이 대기업 오너의 횡령, 배임, 회계부정, 탈세 등 혐의에 대해 회사의 회계장부를 대거 압수한 후 몇 달 동안 장부를 뒤지면 어느 기업이든 법망에 걸려든다는 자신감이 검찰에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우리 기업에는 체질적으로 탈법과 위법의 징후가 배어 있어 외부 리스크에 크게 노출돼 있으며 이러한 탈법, 위법을 방지하고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지배구조 부서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지배구조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나라별로 최소한도의 요구만 법에 규정돼 있을 뿐, 그 밖에는 개별 기업의 정관(定款) 자치를 통한 자율적 선택에 맡겨져 있다. 그런 점에서 국제적인 통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도로 지켜야 할 룰과 가치가 있고 우리나라도 이 최소한의 국제기준은 지켜야 한다. 그래야 국제적 투자가가 한국 기업의 투명성에 신뢰를 가질 수 있다. '히든 챔피언'의 저자 헤르만 지몬 회장은 한국경제 결함의 하나로 사고방식의 세계화가 안돼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 지적은 우리 기업지배구조의 현실을 보면 금방 수긍이 간다. 외국인투자가의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냉정한 평가의 이면에는 이러한 낙후된 기업지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지배구조의 문제를 회사의 대내적 문제라 해 마냥 회사의 선택과 자율에만 맡겨둘 것은 아니다.

지배구조는 1997년 외환위기 이래 회사법 개정의 중심 화두였다. 올해도 법무부의 지배구조에 관한 회사법 개정안은 재계의 반발로 국회 발의조차 못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는 국가의 권력분립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남용 즉 경영진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경제권력을 기능적으로 분점, 재배치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운영형태의 최대 문제점으로 오너의 제왕적 경영과 이에 따른 이사회와 감사기능의 형해화가 지적돼 왔다. 만일 감독과 감시를 위한 여러 제도들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했더라면, 반복되는 기업의 비행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재계의 주장대로 회사법 개정안과 같은, 지배구조의 강행적 해결이 적절하지 않다면, 이러한 취약한 의사결정구조와 견제기능을 개선할 실효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새해에는 하루빨리 우리나라에 맞는, 좋은 기업지배구조가 과연 무엇인가에 관해 공통이해가 이뤄져 그에 따른 준법 윤리 정도 경영이 정착됐으면 한다.

기업은 최근 불행을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 경영과 감독에 관한 고질적, 구조적 폐습을 버려야 할 것이다.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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