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민영화 프레임’ 논란의 본질/ 정치경제부장 조석장

조석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1.02 16:54

수정 2014.10.30 18:28

[데스크칼럼] ‘민영화 프레임’ 논란의 본질/ 정치경제부장 조석장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어떤 사람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 머릿속에 코가 크고, 몸통이 거대하고, 늘어진 귀가 있는 코끼리에 대한 정보가 빙빙 돌게 된다. 미국의 인지언어과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자신의 '프레임 이론'을 설명하면서 예를 든 사례다.

프레임(frame)은 '세상을 보는 틀'을 의미한다. 프레임 이론은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를 반박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상대의 프레임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무엇이 상식으로 간주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어떤 프레임들이 사람들의 뇌 속에 있는가와, 그러한 프레임이 얼마나 자주 환기되고 사용되느냐에 따라 상식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역대 최장기간 이어진 철도파업으로 지난 세밑이 뜨거웠다. 극적인 여야 협상으로 파업국면이 마무리됐지만 이번 철도파업은 '민영화 프레임'이라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정부마저 '민영화=악'이라는 노조의 프레임에 걸려 허둥대고, 결과론적으로 민영화를 공기업 개혁의 방식에서 제외하고 말았다. 코레일의 방만경영에 대한 수술이라는 핵심은 알려지지 않은 채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조의 구호만 부각되면서 여론전에서 밀렸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지만 정부는 민영화 반대론에 대해서도 분명한 얘기를 했어야 했다.

한번 생각해보자. 사실 여야 모두 공기업 개혁에는 공감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공기업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위기국면이라며 강력한 공기업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야당도 그동안 국정감사 등을 통해 공기업의 방만경영을 질타해왔고, 개혁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여야가 모두 공기업 개혁에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번 철도파업 때 나온 '민영화 프레임' 논란의 문제는 무엇인가.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조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부가 민영화 프레임에 동조하고 나섬으로써 국민들에게까지 민영화는 바쁜 것이라는 확실한 선입관을 갖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공기업의 비효율을 고치려면 민영화가 불가피한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 민영화 논의를 어렵게 만들어놔 버렸다.

한국에서 민영화 반대론은 IMF 외환위기 이후 악화된 노동환경 속에서 진행된 정부의 가혹한 공공부문 개혁과 민영화 정책에 대한 불만과 위기의식 속에서 탄생했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적 흐름에 저항하는 모든 형태의 사회운동과 유기적으로 결합, 전개돼 그 뿌리가 깊다. 아울러 공기업 개혁 필요성이 대두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돌출돼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민영화는 많은 나라에서 시도하고 있는 공기업 개혁의 유효한 한 방식이라는 현실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공기업은 민간부문에만 맡겨놓아서는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그 일을 수행한다. 특히 공공재는 수익성이 약해 민간기업으로부터는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정부나 정부가 지배권을 가진 공기업이 공급한다. 이에 따라 공기업은 수익성이 낮을 수 있는 태생적 한계를 타고난다. 공기업은 또 사업영역에 민간기업의 진입이 제한되기 때문에 경쟁의 압력이 없어 방만경영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것이 공기업 개혁 문제가 어느 나라에서나 제기되고 있는 원인이다. 공기업의 개혁 방식에는 정부가 통제력을 강화하거나 경쟁구도를 만들거나 하는 방식과 지분을 아예 민간기업에 팔아넘기는 민영화가 있다.
민영화는 여전히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기업 개혁의 주요한 기제로 여겨지고 있다.

민영화를 하면 시장경제적인 경쟁 도입으로 방만경영 등은 개혁될 수 있지만 공익적 서비스 저하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악화될 수 있는 양면이 있다.
철도파업에서 진정 우리가 되새겨야 할 점은 민영화는 분명 양면을 가지고 있지만 악은 아니라는 점을 다 알면서도 침묵하는 건 성숙한 프레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seokjang@fnnews.com 조석장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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