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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경천애인이 아닌 경인애천(敬人愛天)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1.06 17:23

수정 2014.10.30 17:59

[여의나루] 경천애인이 아닌 경인애천(敬人愛天)

'하늘'이란 정의는 참으로 막연하다. 사전에서조차 '지평선이나 수평선 위로 보이는 무한의 넓은 공간으로 하느님을 달리 이르는 말, 천공(天空)에 있어 신 또는 천인 천사가 살고 사람이 죽어서 올라가 머무르는 청정무구한 상징의 세계'라고 황당하게 정의 내리고 있으며 또 다른 사전에서는 '사람이 종종 땅에서 위로 올려다볼 때 보이는 곳'으로 돼 있다.

하늘에 상대적 단어인 '땅'의 정의는 대단히 구체적이다. 하늘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땅에 비해 직접적이지 못하며 땅을 밟고 생활하는 인류로선 땅은 현실적 내지 물리적 개념이었고 하늘은 그 반대였다. 그래서 땅에는 땅값이 있으나 하늘엔 하늘값이 없는 것일까? 만약 인간이 날아다니는 짐승이라면 분명 하늘에 대한 해석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싸움을 좋아하는 인간은 아마 하늘에서조차 하늘 따먹기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땅값처럼 하늘값도 분명 매겨져 있으리라 추측된다.

어쨌든 하늘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 간접적이지만 신성시되고 있으며 대기권 밖, 우주, 저승, 하늘나라 등등의 단어로서 높은 곳, 아주 먼 곳을 상징하는 의미로 많이 적용돼왔다. 그렇다면 소위 그 환상 속의 하늘의 시작은 어디부터인가? 너무 쉬운 질문이다. 바로 지표면으로부터 시작되지 않는가? 우리가 동경하는 그 환상의 하늘은 지표 1㎜부터도 하늘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하늘 속에서 호흡하고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미 하늘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하늘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별개의 세계라고 착각하며 하늘과의 경계를 스스로 긋고 있다. 하늘은 해외여행이나 가야 비행기로 하늘을 경험한다고 못 박고 있다. 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부터가 하늘이지 꼭 고공(高空)으로 올라가야만 하늘인 것은 아니다.

땅은 일군 음식물이 자라서 우리에게 먹잇감을 제공함에 비해 하늘은 우리에게 눈처럼 직접 떨어트려 주지는 않지만 하늘의 협조 없이는 결코 땅에서의 음식물이 자랄 수 없다. 흉작은 하늘의 외면을 의미함이며 그것은 이미 하늘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뜻인데 꼭 흉년이 들어서야 하늘을 직접적으로 원망한다. 풍년일 때는 간접적으로 고마워하면서…. 그만큼 우리는 하늘의 직접 영향권 내에서 살아가고 있음이 증명되는데도 땅만큼 체감의 비중이 약하다.

이미 하늘에 살고 있으면서도 하늘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불감처럼 희망 속에 충분히 살고 있으면서도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 같다. 멀리 있는 하늘만이 반드시 하늘이 아니고 오히려 땅과 가장 가까이 있는 '따뜻한 하늘' '행복한 하늘' 공기가 있는 하늘, 하늘 중에서도 선택받은 하늘에 이미 살고 있으면서도 하늘 속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또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땅에서 살아간다고만 생각하는 비중이 높은 반면 하늘에서도 동시에 살아가고 있다라는 생각은 포기된 것처럼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바로 그 의식이 인류에게 확산 내지 재인식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고도화된 인류 정서가 형성돼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다. 과연 그 생각은 인간에게 날개가 돋아나야만이 가능한 허망된 갈릴레오 식의 공상일 뿐일까? 전쟁도 없고 갈등도 없고 착한 사람만이 모여 살 것 같은 평화스러운 하늘에 대한 동경을 우리는 너무나 높다고 멀다고 또 어렵다고만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땅과 하늘 속에 동시에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해 보자. 그것은 삶의 공간이 땅뿐이라는 평면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하늘까지 포함되는 입체성으로 승격된다.

주거의 평수가 늘어나듯 살아가고 있는 터가 무한대로 넓어짐과 정비례해 삶의 질은 물론 세상에 대한 관용과 배려 또한 커지리라 생각된다.

어쨌든 땅에서만 살고 있다는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이제는 깨트리며 정신적 혁명이 필요한 지금이다. 엉뚱하게도 대한민국 공군가(空軍歌) 2절에서 그 지혜를 찾는다.
'…하늘은 우리의 일터요 싸움터, 하늘은 우리의 고향이요 또 무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모셔지는 하늘이 아니고 가깝고 생활화되는 하늘의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경인애천(敬人愛天)으로….

강형구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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