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로봇박사 데니스 홍 “한국 이공계 기피, 말기암 수준”




2011년1월 29일, 미국 플로리다주 데이토나 국제자동차경기장. 검정색 스포츠 실용차(SUV) 1대가 약 45km도 안되는 속도로 트랙을 따라 돌았다. 앞선 승합차에서 종이상자들을 연거푸 집어던졌지만 이 SUV는 안전하게 결승선에 도착했고, 관중석에선 일제히 탄성과 함께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주행을 무사히 마친 남성 운전자는 자동차에서 내려, 달려온 아내와 부둥켜 안고 한참동안 눈물을 쏟았다. 앞을 볼 수 없었던 이들에겐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이날 공개된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두고 워싱턴포스트는 ‘달 착륙에 버금가는 성과’라며 대서특필했고 미국 CBS와 NBC는 물론, 영국 BBC 및 일본 NHK 등에서도 앞다퉈 크게 보도했다.

모두가 무모한 짓이라고 손가락질했던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사람은 바로 데니스 홍(43, 홍원서) 버지니아 공대 교수다. 세계 로봇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린 그는 사실 2009년 세계적인 미국 과학잡지인 포퓰러 사이언스로부터 ‘세계 과학을 뒤흔들 젊은 천재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홍 교수는 2009년과 2011년엔 글로벌 대중강연 프로그램인 테드(TED) 강연자로 나서 스타덤에 올랐다. 로봇을 차세대 먹거리로 육성하고 있는 구글까지 그를 탐내고 있다. 7세 때 영화 ‘스타워즈’를 보고 로봇에 ‘꽂혀’ 한 우물만 팠기에 가능했다. 지난 17일 이른 아침,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한국 과학기술의 현주소와 문제점, 해법을 들어봤다.

◇한국내 이공계 푸대접 “쇼킹하다”

한국 과학기술을 어떻게 진단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뜸 ”쇼킹하다“고 했다.

현재 버지니아공대 교수로 재직중인 그가 한국의 대학 캠퍼스 세미나에서 만난 대부분의 젊은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인상은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것같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꿈’이 없어보였다“고 말한 그는 그런 젊은 과학도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홍 교수는 한국사회에 만연해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이미 이공계에 진학한 학생들조차 다른 길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많이 ‘쇼킹’했어요“라며 ”고등학교에서부터 이공계는 찬밥이라는데, 이 정도면 말기암 수준 아닌가요?“라며 이공계 푸대접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엔지니어라고 하면, 흔히 한국에선 자동차 수리공과 같은 기술자로 생각하지만 이건 편견입니다. 다시 말해, 과학자는 어디까지나 수학과 과학을 이용해서 이 사회에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수퍼히어로’ 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행복을 극대화 시키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죠.“

이공계 기피 현상은 바로 엔지니어들에 대한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젊은 과학도는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 말아야“

상황이 이렇다보니, 엔지니어들은 점점 사각지대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사회에서 엔지니어를 단순 기술직으로 바라보니, 미래 비전이 불확실해 보이는 거죠. 경제적인 부분도 힘들 것 같고, 사회적인 평판도 그렇죠. 이러니, 누가 이공계에 가려고 하나요.“ 홍 교수는 인터뷰동안, 자신의 로봇계 업적이나 사생활보단 한국의 젊은 과학도들에 대한 걱정과 염려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물론,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진심어린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엔지니어에 대한 편견 바로잡기는 기성세대들의 몫이지만, 그렇다고 도전의식까지 포기해선 안된다는 판단이었다.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해선 안됩니다. 누구나 항상 이길 순 없죠. 하지만 항상 배울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승자는 누가 얼마나 더 실패를 더 받아들이고, 다음 기회를 엿보는 자에게 돌아간다는 겁니다.“ 2년동안 공들여 지난해 3월 출간한 베스트셀러 ‘로봇 다빈치, 꿈을 설계하다’도 그의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이 책의 수익금 전액은 사회에 기부되고 있다.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는 ‘재난 구조용 로봇’

그는 요즘 한국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소위 시각장애인용 자동차와 테드 강연자로 알려진 유명세 덕분에 국내 방송사 인터뷰는 물론이고 각 대학의 초청 세미나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본의 아니게 얻은 인기(?)를 한국에서 엔지니어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는 데 쓰고 싶습니다. 연예인도 아닌 제 인지도가 얼마나 갈까요. 그 전에 조금이라도 엔지니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는 데 미력하나마 힘이 되고 싶습니다.“

실제로 그는 요즘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새로운 과학 애니메이션 제작을 비롯해 지상파의 과학관련 시트콤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파급 효과가 큰 방송을 최대한 이용해, 이공계를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꿔보겠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돌아갈 곳은 결국, 연구실이라고 했다. ”제 생애 마지막으로 큰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중인 재난 구조용 로봇입니다. 원전 사고와 같은 현장에서 수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로봇이죠. 이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는 팀원들이 한국에서도 많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음 미팅 장소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에선 순수 과학도에 대한 강한 열정과 자부심이 전해졌다.

▷데니스 홍 버지니아 공대 교수는
1971년 미국 LA 외곽에서 태어났으며 3세 때 한국으로 이주, 국내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유학, 위스콘신대 기계공학과를 거쳐 퍼듀대에서 기계공학 석사와 학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버지니아 기계공학과 교수 겸 로봇 공학 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의 부친은 한국항공우주학회장을 역임한 홍용식 박사이며 형(홍준서)은 미 국방연구원(IDA), 누나(홍수진)는 미 국립암연구원 등에 재직중인 과학자 집안이다.

(서울=뉴스1) 허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