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특별기고] 공공기관 정상화 성공하려면 건강한 노사관계 리더십 필요

김성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2.11 17:12

수정 2014.10.29 20:20

[특별기고] 공공기관 정상화 성공하려면 건강한 노사관계 리더십 필요

필자가 공직 재임 중 경험한 공공기관의 요지경 사례다.

W공단은 직제 심사가 깐깐하게 진행 중인 일요일 아침, 노조 위원장이 조합원 70여명을 버스 2대에 태워서 당시 담당관이 사는 아파트 벽에 '00 말살하는 00부 000은 자폭하라'는 현수막을 걸고, 주민들 통행을 막은 채 구호를 외치며 집단 시위를 했다. 이 기관에서 승진 인사는 이사장과 노조 위원장이 나눠 먹기 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H공단은 노동운동가 출신 이사장이 가계지원비를 편법 지원하기로 노조와 이면 합의한 것이 적발되어 임기를 1개월 남긴 시점이었지만 재발 방지와 교훈을 위해 직권 면직했다.

C공제회는 당시 공공기관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사회보험 업무를 수행하는 데 아무런 통제 없이 연봉 2억4000만원이 넘을 정도의 과다한 보수와 방만경영을 해 우여곡절 끝에 공공기관 지정 후 보수를 30% 삭감했다. L원장은 학자 출신이나 복잡.다양한 노사관계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치밀한 전략 없이 개혁을 추진하다가 결국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 기관은 망가졌다.
이 외에도 많다.

공공기관 정상화는 목적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면서 국민 부담이 될 방만요인을 해소하는 기관 운영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공공기관을 운영하려면 전문성과 건강한 노사관계를 이끌어 갈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노사관계가 자리잡지 못하고 원칙이 무너지면 불합리한 관행들이 그 자리를 독버섯처럼 채우기 쉽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중심 축이 공공부문으로 옮겨졌다. 공공기관 노조 조직률이 64%로 10%인 민간보다 높고, 그간 불법 파업과 근로손실일수는 많이 줄었어도 공공기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늘었고, 노조의 정치 지향성 때문에 공공기관 노사관계가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정상화 개혁이 성공하려면 실패를 초래하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고 과감히 실천해야 한다.

첫째, 경영진이 소신껏 하게 하려면 개혁 과정에서 작은 과실이나 마찰은 인내하며 기다려 주고 최소한 감사나 징계를 받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성과에 상응하는 보상이 평가.인사에서 체감돼야 지속 가능하다. 불협화음이 나면 문제 인물로 백안시되거나 '좋은 게 좋다'는 온정적(溫情的) 기관 운영으로는 사소한 개혁도 성공하기 어렵다.

둘째, 편법·이면 합의를 확실히 끊어야 한다. 전문성과 리더십 없는 기관장은 취임 초부터 출근저지 투쟁을 당하고, 근본 문제보다 미봉책을 선호해 이면 합의의 유혹이 많다. 밀실 담합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합의를 공개하지 않으면 당사자 스스로 효력을 인정하지 않기로 단협을 체결하게 하는 방식도 있겠다.

셋째, 문외한이나 능력 부족자를 공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배려하는 대신 역량 위주로 인선해야 한다. 즉 공신 중 역량이 출중한 자도 있으니 옥석을 가려서 인사를 해야 한다. 대기업에 근무하다 협력업체에 진출하는 사례가 많지만 이걸 낙하산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전문성, 리더십을 갖춰도 영원히 낙하산으로 불린다. 이런 경우 기관이 필요로 하는 역량가라면 일정 기간 취업제한을 두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넷째, 공공기관 임직원의 정치활동 제한규정에 구멍이 뚫렸다. 공무원은 헌법, 국가.지방공무원법, 공직선거관리법에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제4조 제1항 제3호)과 공직선거관리법(제53조)은 50% 이상 출자기관(26개) 임직원에 대해서만 정치활동(선거 입후보, 선거운동,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을 제한할 뿐 공공기관 임직원에게는 이런 규정이 없다. 공공기관 노사의 정치 지향성과 현실을 고려하면 빠른 법 개정이 필요하다.


다섯째, 개혁은 치밀한 전략·방법을 준비하고 시행해야 한다.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고, 개혁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홍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공기관 정상화 개혁같이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민심만 잃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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