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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책장 속에서 길을 잃다

박경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2.17 16:51

수정 2014.10.29 17:07

[fn논단] 책장 속에서 길을 잃다

아내는 그릇을 무척 좋아한다. 이런 기질은 여행 중에 더 강하게 나타나서 마주치는 그릇집은 꼭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다. 얼마 전 이스탄불에서도 그랬다. 도착한 날 호텔 앞에 옹기종기 붙어 선 그릇집들을 보는 순간 앞으로 전개될 일이 눈에 선했다. 예측대로 일은 진행됐다.

이슬람문화 특유의 문양과 모양을 가진 그릇들은 그녀의 마음을 당장에 사로잡았고 성스러운 그릇집 순례의 막이 올랐다.
어느 상점에서 묘하게 생긴 차 주전자 한 놈에게 매료된 그녀는 그날부터 생쥐 풀 방구리 드나들 듯 조석으로 그 집을 들락거렸다. 한국아줌마의 끈질김을 모르는 남정네가 있을까.

이번에 더 크게 깨달은 점은 터키 장사꾼의 끈기도 그에 못지않다는 점이다. 매일 구경과 흥정만 하는 손님에게 낯색 하나 변하지 않고 차(茶)까지 대접하며 반기는 사내의 상술은 모스크사원처럼 도저했다. 역시 하수(下手)는 내 쪽이었다.

하루는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막 동행이라 선언하고 따라 나섰다. 그날 사단이 나고 말았다. 주인이 아내에게 보여주려고 멋진 차 주전자를 꺼내다가 그만 뚜껑이 떨어져 깨지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 이제야 이판사판 결판이 나겠구나." 역시 '밀당'은 끝났다. 그녀는 같은 걸 구해오면 그 가격에 사겠다고 했고 반색을 한 사내는 당장에 전화기를 들고 �라 �라 누군가에게 주전자 모양새를 설명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사연 많은 주전자로 차를 마시다가 아내의 그릇장 옆에 서 있는 내 책장을 쳐다보았다. 주부에게 그릇장이 갖는 의미나 바깥 일꾼에게 책장이 갖는 의미는 유사하다. 말하자면 주부나 직장인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느끼는 중요한 수단이다.

언젠가 유명 작가의 역사소설로 대하드라마를 만들 계획으로 자택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서재에서 작가와 얘기를 나누는 중에 함께 간 후배는 귀를 기울이는 데 나는 한눈을 팔 수밖에 없었다. 360도로 벽을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책이 생산하는 광채! 책장의 책은 그 주인이 직업인으로서 가진 아우라라는 걸 그때 처음 느끼게 되었다.

TV에서 세계적 석학들의 인터뷰 때 배경으로 선 장중한 책장을 보노라면 마치 오케스트라 지휘자 뒤로 악기를 든 수십명의 단원들을 보는 듯하다. 연주자 한 명 한 명을 아울러서 그가 빚어낼 장엄한 교향곡이나 책장 속 한 권 한 권의 책들을 아울러서 대학자가 빚어낼 더 높은 지식과 철리를 헤아려 보는 것이다.

아내의 그릇장을 들여다 보니 칸칸이 온갖 종류의 그릇들이 가득 차 있다. 그릇들은 용도도 모양과 무늬도 다양했지만 일통하는 주제가 있었고 지향점도 있는 듯했다.

그중엔 각양각색 스무개 가까운 차 주전자가 빛나고 있다. 영국에서부터 독일과 이탈리아, 중국, 일본에서 온 것들이었고 터키 출신도 들어 있었다.

아내의 그릇장이 헤비급이라면 내 책장은 홀쭉한 라이트급 선수였다. 소설책 수십권과 시집들, 시나리오 극작론과 매스컴 이론서 몇몇 권. 제목을 훑어보는 데 채 10분도 안 걸리는 양이었다.

양이 작으니 독서의 주제나 체계적 방향성을 따지고 말고 할 필요도 없었다.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제목들을 훑어보았다. 오랜만에 맡는 책 향기가 좋았다.
아내의 질긴 집착과 탐욕을 흉봤지만 세상을 누비며 내가 탐닉했던 바는 무엇이었을까.

그날 나는 책장 속에서 길을 잃고 한참이나 미아가 되어 있었다.

이응진 문화칼럼니스트·드라마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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