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창조하는 과학기술 리더들]

정민근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기초연구는 창조경제의 뿌리”

세상이 고도로 분업화됐다. 우리의 사고도 너무 전문분야에만 좁혀져 있다. 의사가 좋은 사례다. 예전에 의사들은 대부분 우리 몸 전체를 보고 진단했다. 요즘은 전문의 중심으로 바뀌었다. 내과·외과· 소아과·안과·피부과·신경과 등이 세세하게 나뉘어있다. 하지만 몸은 하나의 시스템이다. 부품이 아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해당 분야가 아니면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주 전문적인 부분이야 그럴 수 있지만 전체를 보면서 자신이 전문성을 가진 부분을 보는 시야가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요즘 얘기하는 '창조경제의 키'가 되지 않을까.

정민근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사진)의 창조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한마디로 부분과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융합형 기초연구가 창조경제의 뿌리이자 생태계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

특히 그는 창조경제와 기초연구의 연관관계를 '나무'에 빗대어 소개했다. 그는 "기초과학은 창조경제의 뿌리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창조경제의 양분이다. 기업은 열매 맺게 하는 기둥이다. 뿌리가 대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영양분과 물을 흡수해 나무의 각 부분에 전달해야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양적 성과 중심의 기초연구를 질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평가방식을 개편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올해 리더연구자지원사업(창의연구)과 글로벌연구실(GRL)사업 등에 시범적으로 해외 평가자를 활용한 글로벌 평가를 도입할 예정"이라며 "이를테면 분야별 세계 상위 10% 저널이나 세계적 수준의 학술대회 논문의 심사자나 편집자처럼 역량이 검증된 해외 우수 연구자 등으로 평가자 풀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기초연구 역량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전환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연구성과가 보장되는 안전한 연구가 아니라 실패할 수도 있는 연구에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3일 정 이사장을 서울 헌릉로 소재 한국연구재단 집무실에서 만나 기초과학 연구 방향과 현안에 대해 들어봤다.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지 1개월 반가량 지났다. 그동안의 활동과 향후 중점 과제는.

▲대학에서 연구자이자 교육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사장 취임 후 세가지 다짐을 했다. 임기 동안 연구자에게는 머리와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연구지원 서비스를, 재단 직원에게는 행복한 일터를, 국민에게는 삶의 질 향상을 안겨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기초과학연구가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정량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연구의 질적인 측면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핵심 전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평가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질 중심의 평가체제로 전환할 경우 세계를 선도할 양질의 성과는 물론 연구자의 신뢰도 자연히 높아질 것이다.

질 중심의 평가를 위해 학문분야별 특성을 고려해 논문의 질이나 기술이전 실적 등으로 평가지표를 차별화하겠다. 우리 기초연구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논문 수, 특허 수와 같은 양적 성과지표 활용을 축소하고 논문 게재 학술지의 표준 영향력이나 피인용 횟수, 특허가치평가, 기술료, 기술수준 같은 질적 성과지표 활용도를 높이도록 하겠다.

평가의 주체가 되는 평가자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대학교수에서 공공이나 민간의 연구소, 산업체, 나아가 해외 연구소까지 다변화하도록 노력하겠다. 평가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연구자가 요청하는 경우 평가자 신원을 제외한 평가점수 분포나 평가항목별 평가의견 등 평가 결과 세부 내용을 제공토록 하겠다. 온라인 평가시스템을 통해 주관적 요소의 개입도 최소화하겠다. 일련의 과제를 실천해 우리 기초연구사업의 질적 평가 강화를 통해 국가 경쟁력의 원천인 창의적 지식창출을 견인해나가고자 한다.

특히 올해 창의연구와 GRL 사업 등에 시범적으로 해외 평가자를 활용한 글로벌 평가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테면 분야별 세계 상위 10% 저널이나 세계적인 수준의 학술대회 논문의 심사자나 편집자처럼 역량이 검증된 해외 우수 연구자 등으로 평가자 풀을 확대하는 일이다.

―지난해 연구재단이 과학기술 연구성과의 기술이전 및 사업화에 관심이 많았다. 올해도 이런 기조를 이어갈 생각인가.

▲지난해 기술사업화단장을 선임하고 우수성과에 대한 발굴과 후속지원을 위한 체계를 구축했다. 기술사업화단장은 주로 국책연구사업의 기술수요조사와 기획연구 등을 수행할 때 사업성을 검토하고 산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가교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단계평가 등에서 사업화 관점의 컨설팅 평가도 지원하게 된다. 핵심은 우수 연구성과가 후속연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계해주는 것이다. 연구자에게 제품을 기대하는 건 아니다. 연구자는 연구에 집중하되 우수한 연구성과는 적극 발굴해 우리 경제의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응용이나 개발연구로 이어지도록 후속연구를 지원하자는 취지다. 물론 서랍속에 잠자고 있을지 모를 우수성과를 찾아 수요자인 기업체 등에 노출시켜 빛을 보게 하는 직접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연구자가 원하는 연구를 할 때 가장 창의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과학기술 역량제고와 인력양성이라는 기초연구 본연의 목적을 잊지 않겠다.

―창조경제를 위한 재단의 역할과 전략은.

▲기초과학이 창조경제의 뿌리라면 기업은 그것을 열매 맺게 하는 기둥이라고 생각한다. 뿌리나 기둥이나 각자 맡은 역할이 있겠지만 뿌리가 대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영양분과 물을 흡수해 나무의 각 부분에 전달하지 못하면 애초부터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정부와 민간의 꾸준한 투자 덕분에 지금 우리 기초연구 역량은 열매 맺기에 충분한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기초연구사업과 대학 역량강화사업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연구 중심대학 기반 강화와 대학-출연연 간 인력 교류, 지역별 거점대학 육성, 연구 인프라 조성 등으로 건강한 기초연구 생태계를 갖췄다. 이제 관건은 뿌리가 흡수한 영양분이 기둥이나 가지로 전달될 수 있느냐이다.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융합된 기초연구 성과들이 기업을 통해 새로운 제품과 시장,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수요자 중심의 연구성과정보 제공서비스 '성과마루'를 시작한 것도 기초연구 성과가 더욱 더 국민의 삶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업화나 창업으로 이어갈 수 있는 기초연구 성과가 연구자의 논문이나 특허라는 형태로 머물러 있지 않도록 연구성과 정보의 문턱을 낮추자는 것이다. 사업화나 창업으로 연계될 가능성이 높은 기초연구성과를 발굴하고 시제품 제작이나 성능 개량 같은 사업화에 필요한 후속연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연구성과 정보의 공개와 활용을 촉진시켜 창조적 부가가치 창출에 앞장서겠다.

―우리나라 기초연구의 현주소와 현안은.

▲우리 기초연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우리 정부 전체 연구개발 예산은 2003년 6조5000억원에서 연평균 10.5%씩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해왔다. 그에 발맞춰 2011년 기준 과학논문인용색인(SCI) 논문 수 4만4718편, 피인용 횟수 3.77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양적 성장은 질적 성장을 이루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논문 수는 세계 11위이나 논문 1편당 평균 피인용 횟수는 세계 30위 수준이다. 이제는 확대된 기초연구 저변을 기반으로 양적성과에 걸맞은 질적 성장을 위해 뛸 때가 온 것이다.

기초연구분야에 대한 전략도 필요하다. 그간의 성장에 안주하지 말고 기존과는 차별화되는 선도형 과학기술 전략이 필요하다. 선도형 기초연구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연구성과가 보장되는 안전한 연구가 아니라 실패할 수도 있는 연구에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 기초연구 역량의 퀀텀점프를 위해서는 소통이 필요하다. 재단은 미래부 소관 사업과 교육부 소관 사업의 연계를 통해 기초연구자의 연구수행이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협업체계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나노융합2020 사업 등 혁신적 연구 성과를 위해 범부처적인 연구개발 협력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학문 간 장벽을 넘어 원활히 소통하고 기업과 대학이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간 연구자로서 가졌던 소신이 있다면.

▲본래 전공은 실용학문인 산업공학이다. 미국에 있을 때 실용학문을 해도 기업들이 연구비를 많이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국내에 와보니 상황이 달랐다. 실용연구를 하면 박사과정 학생들이 논문 주제를 선정하는 데도 문제가 있었다. 실용과 기초를 접목하는 게 고민이었다. 학문적 기초에 해당하는 부분은 끊임없이 접목해야 한다고 본다.

신임 교수들에게도 매번 하는 말이지만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내가 맡은 분야는 무엇인지 세부분야를 정하고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중요하다. 깊이 있는 내용의 연구를 하고 항상 국제학회를 가서 사람들과도 소통을 지속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고 학문도 깊어진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박지애 기자

■정민근 이사장은…

정민근 한국연구재단(NRF) 이사장은 학술 및 연구개발 정책방향과 지원체계에 대한 전문역량이 탁월한 리더로 꼽힌다.

정민근 이사장은 부산에서 출생해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산업공학 공학사를 마친 뒤 1980년 미국 미시간대 인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1987년 포항공과대학교 교수로 부임해 교무처장, 산업경영공학과 학과장을 지냈고 대한산업공학회장을 맡았다.

포항공대 재직시 정 이사장은 원천기술분야에 대한 장기적 투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왔다. 또 교무처장 재직 시 과학.공학도들이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경험하고 학제간 교류가 필요하다고 주창해 학사 시스템 개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전공분야인 산업경영공학 분야에서는 지난 2006년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에서 열린 국제인간공학회에서 석학회원상을 수상하는 등 학문적 성과도 인정받았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한국연구재단은…

'인간과 자연 탐구를 위한 종합지원 기관.'

한국연구재단(NRF)을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전 학문분야의 연구를 지원하고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준정부기관이다. 국가 기초연구지원시스템의 효율화와 선진화를 목적으로 지난 2009년 6월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하나로 통합돼 새로 출범해 올해 6년차를 맞이했다.

현재 기초연구본부, 인문사회연구본부, 국책연구본부, 학술진흥본부, 경영관리본부 등 다섯 개 본부와 국제협력센터, 성과확산실 등으로 구성된 조직에서 약 300명이 근무 중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 분야는 △이공분야기초(일반연구, 기초연구, 선도연구) △원천기술개발(나노.소재 기술, 공공복지안전, 연구실안전환경조성) △원자력기술개발(방사선기술, 원자력기술) △거대과학(다목적 실용위성 개발, 우주 핵심기술 개발) △국제협력(국제공동연구, 남북교류 및 협력) △학술.인문사회(인문학진흥, 한독공동기금사업) △교육.인력양성(여성과기인지원, 이공학교육활성화, 녹색성장분야 전문대학원 육성) 등 7개로 국내에서 이뤄지는 전 학문분야의 연구개발 지원과 육성에 관여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