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법률서비스시장 탈출구는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2.25 16:34

수정 2014.10.29 14:01

[데스크칼럼] 법률서비스시장 탈출구는

그동안 '경기 무풍지대'를 걸어온 법률서비스 업계가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불황으로 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줄이면서 법률서비스 시장에서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자문업무가 줄어 큰 경영압박을 받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상반기 10대 그룹의 투자실적은 36조7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39조2880억원)에 비해 8.2% 줄었다. 그마저 해외투자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자문업무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로 인해 상당수 대형 로펌의 경우 70∼80%에 달하던 자문 수수료 비중이 지금은 50% 이하로 떨어지면서 경영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송무시장 역시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로스쿨제 도입 이후 변호사는 해마다 크게 느는 데 한정된 '파이'를 놓고 다투다 보니 제살깎기가 심화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임료 인하는 기본이고 성공보수에도 이른바 '네고' 가 이뤄지고 있다. 심지어 착수금을 소송 완료 후로 돌리는 후불제까지 등장할 정도다.

로펌이나 법률사무소 간 과열경쟁은 수수료 감소로 이어져 소비자나 기업 입장에서 어찌 보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제살깎기는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덤핑으로 수주한 건설공사는 부실시공이나 하자발생 등으로 나중에 그 대가를 치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소로펌 업계는 변호사들이 비전문 분야 사건까지 맡는 '영역파괴'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수익성이 낮아 손사래 치던 이혼 등 가사사건과 행정사건도 넙죽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비전문 분야로의 진출은 법률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 더 나아가 경쟁 과열에 따른 제살깎기와 전문영역 파괴 현상은 법률서비스 업계 전반의 경쟁력을 갉아먹어 법률시장의 대외개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유럽연합(EU)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지난 2012년부터 국내 법률시장이 단계적으로 개방되고 있다. 3단계 중 2단계까지 시행 중인 지금까지는 개방 정도가 미미한 수준이어서 충격파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2017년에는 해외 로펌이 국내 로펌과 합작사업체를 만들어 국내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국내에서의 자율적인 법률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된다.

로펌 업계에서 법률시장 개방의 성공&실패 사례로 독일과 일본을 꼽는다. 일본은 지난 1987년부터 18년간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했지만 중대형 로펌 15개 중 절반 이상이 영.미계에 흡수됐다. 그래도 1∼5위권 로펌들은 인수합병과 세대교체 등을 통해 대형화.전문화에 성공하면서 토종 로펌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에 비해 독일은 1998년 법률시장을 전면 개방한 후 10대 로펌 중 8곳이 영.미계 대형 로펌에 흡수합병돼 자존심을 구겼다.

경쟁력 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선 이들 나라마저도 시장개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우리나라의 토종 법률서비스 업계의 붕괴는 불보듯 뻔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한정된 국내 시장을 놓고 무리한 출혈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시장을 해외로 확대해야 한다. 그러기에 앞서 전문성을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대형법무법인들은 무리한 전관 영입과 합병을 통한 외형 키우기보다 해외 로펌과의 협력 확대 등을 통해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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