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황제 노역’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석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06 17:00

수정 2014.10.28 20:16

[데스크칼럼] ‘황제 노역’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최근 재벌 두 명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른바 일당 5억원 황제노역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과 택시의 출입문 돌진으로 파손된 비용 4억원을 받지 말라고 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닮은꼴은 없지만 두 사람 모두 재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사장에게 박수를 보낸 것은 4억원이라는 돈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이다. 그냥 불우이웃성금 4억원을 기부했다면 전혀 화젯거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허 전 회장은 황제노역 파문 이후 은닉재산 등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과거 부정적 재벌 이미지가 또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삼성은 삼성사회봉사단을 통해 기부금 등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얼마나 사회공헌비용을 쓰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공개하는 금액은 이웃사랑성금이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2011년 300억원. 2012년 2013년은 각각 500억원씩 했다. 그리고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 등 15개 계열사의 2013년 기부금은 6025억원이었다. 전년 3388억원보다 2637억원 증가했는데, 지난해 사상최대의 실적을 기록한 삼성전자에서 2600억원이 증가했다.

삼성이 매년 천문학적인 돈을 사회공헌비용으로 쓰지만 이 사장의 4억원이 더 관심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택시가 돌진했다는 사고 이벤트도 있었지만, 진정성이 들어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다. 회사 관계자도 "만일 진정성 없이 연출한 이벤트였다면 이 같은 관심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예상외의 국민적 관심에 놀라움을 나타냈다. 이 사장은 임원 2명을 보내 "사고를 내고 많이 놀라셨을 테니 가서 진정시켜드리고 오세요"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임원들은 쇠고기와 우족 등을 손에 들고 찾았다고 한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재벌들처럼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욕 많이 먹는 나라도 드물다. 이미 작고한 스티브 잡스나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모두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지만 존경을 받는다. 기부왕이기도 하지만 형식적으로 내놓는 기부금이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 당연지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연봉 5억원 이상의 등기임원들이 공개됐다.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처럼 샐러리맨 신화를 창조해 부러움을 산 경우도 있지만, 일부 재벌 오너들은 일을 안하는 데도 수백억원의 연봉을 받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이 공개한 '부자에 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2명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부자가 더 많다고 답해 여전히 부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않음을 증명했다. 심리학 박사인 최창호 여의도메타포럼 대표는 "재벌에 대한 반감은 우리나라가 전쟁 이후 부를 형성하는 과정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경정착문화여서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 사례가 없었기에 산업화 이후 벼락부자, 졸부들이 생기면서 무시하는 경향이 생겼다"면서 "특히 우리나라 부자들의 경우 기부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고, 부를 세습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옛말에 큰 부자는 하늘이 내려준다고 한다.
그러기에 더 큰 부자일수록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실천덕목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cha1046@fnnews.com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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