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기업하기 좋은 나라, 아직 멀었다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09 17:25

수정 2014.10.28 13:22

[데스크칼럼] 기업하기 좋은 나라, 아직 멀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메아리처럼 되풀이되는 약속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명박(MB)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은 그 정점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기업 하기 참 어려운 나라다. 사생결단의 각오와 두둑한 배짱으로 창업하더라도 낙담하기 일쑤다. 사업 아이템이 좋을 때도 마찬가지다. 왜 창업해서 이 고생을 하는지 자책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창업하려면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온갖 질시를 받을 자세가 되어 있는지. 나는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나는 울화통이 터져도 견뎌낼 만한 사람인지.

창업한 지 6~7년쯤 되는 중소기업 대표를 얼마 전에 만났다. 이 회사는 창업 후 전방산업이 호황기를 구가하면서 한마디로 잘 나갔다. 직원 수도 빠르게 늘면서 현재 200명 가까운 인원이 근무 중이다. 앞으로 수요처가 더 늘어나 영업실적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다. 생산설비를 증설하고 직원들을 위해 기숙사 등 복지시설도 늘렸다. 뿌듯한 성취감에 행복해할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요즘 고민이 많다.

시설을 늘리는 과정에서 분쟁이 생겼다. 공장 주변의 땅 주인이 바뀌면서 늘린 시설로 접근하는 길을 막은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와 옛 땅 주인들로부터는 토지 이용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옛 땅 주인들은 땅을 판 후 '모르쇠'로 일관했고 새 주인은 옛 주인과의 약속은 모르는 일이라면서 토지 이용을 방해했다. 새 주인은 주민들까지 동원해 회사를 압박했다. 수많은 플래카드로 회사 진입로와 공장 주변을 에워쌌다. 공장 이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증설된 멀쩡한 시설을 몇 개월째 사용하지 못했다. 이 중소기업 대표가 파악한 바로는 비싼 값에 이 토지를 사주든지 아니면 공장을 이전해 나가라는 게 새로운 땅 주인의 속내다.

이뿐 아니다. 회사가 잘 된다는 소식에 손을 벌리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지역 행사에 협찬해야 하고 주민들의 눈치도 잘 살펴야 한다. 기술력을 높여 좋은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수요처를 발굴하기도 바쁜데 오히려 부수적인 일에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결국 이 회사는 요즘 새로운 공장부지를 물색 중이다.

최근 박근혜정부는 규제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키고 창업을 늘려 일자리 창출로 연결시키겠다는 복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암 덩어리'에 비유하면서 규제를 근본적으로 들어내는 데 역량을 집중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발맞춰 각 정부부처에서는 법과 시행령 등에 포함된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매번 되풀이되는 규제개혁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기도 해 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법이나 시행령 등에 적힌 '보이는 규제'를 푸는 것보다 '기업 하기 좋은 문화'를 만드는 작업에 더욱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을 혐오하는 문화, 보이지 않는 주변의 간섭, 준조세 성격의 지원 요구 등 보이지 않은 걸림돌을 제거해 주는 게 진정한 규제개혁이 될 것이다.

yongmin@fnnews.com 김용민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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