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이름을 악용한 정치권의 말장난

'정을 몽땅 준 남자.' '박근혜가 말 바꾸네.' '철수(撤收)정치.'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빗대 표현한 문구들이다.

'정을 몽땅 준 남자'는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로 나선 정몽준 의원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름 석자를 본떠 스스로 만든 말이다. '박근혜가 말 바꾸네'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출마 당시 세상을 바꾸겠다는 '박근혜가 바꾸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재가공해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는 패러디 방식으로 야권에서 만든 말이다. 마찬가지로 '철수(撤收)정치'는 새정치 기치를 내걸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입장에서 선회했다며 사실상 원칙론에서 후퇴했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안 대표의 이름을 빗대 비아냥 섞인 표현으로 만든 말이다.

정몽준 후보의 사례는 사실상 네이밍마케팅 차원에서 본인이 자가발전해 만든 반면 박근혜 대통령과 안철수 대표의 경우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제3자가 정치공세용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른 케이스다.

후자의 사례처럼 정치인의 이름을 빗대 정치 공세를 펼치는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새정치연합의 김효석 최고위원이 최근 여당과 언론에서 안철수 대표의 이름을 빗대 '철수정치'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막말정치'라며 자제를 요구한 게 발단이다. 제1야당의 대표 이름을 희화적으로 악용하는 것 역시 막말정치이자 구태정치라는 주장이다. 사실 안철수 대표는 예전 대선출마설이 제기될 당시에도 본인의 이름 때문에 시달린 적이 있다.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 당시 안철수 대선 후보의 인기가 치솟자 "철수가 나오면 조금 있다가 영희가 나오겠네"라고 비꼬면서 암암리에 여권에서 안철수 후보를 깎아내리는 표현으로 애용(?)됐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와 영희를 오버랩시켜 풋내기 신인 정치인에 불과하다는 프레임을 건 셈이다.

그런데 유력정치인의 이름을 활용해 정치공세를 펼치는 행태를 두고 야당에서 일방적으로 화를 낼 이유는 없다.

지난해 구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6개월을 맞아 "'박근혜가 바꾸네'는 '박근혜가 말 바꾸네'로 변질되고 있어 국민의 실망과 배신감은 심각한 지경"이라고 비판하면서 같은 방식의 정치공세를 펼친 바 있다. 물론 정치권에서 종종 이름을 빗대 정치공세를 펼치는 행태를 굳이 나무랄 필요는 없다. 유력 정치인이라면 어떤 방식의 정치 공세도 감당해내야 할 내공을 갖췄다고 보는 게 통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대편 정치인의 이름을 활용해 펼치는 정치공세는 자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논쟁의 핵심을 덮어버리는 역효과를 낳는다.


새정치연합 박광온 대변인이 철수정치 논란에 대해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이름을 농담 소재로 삼는 것은 금기"라며 자제를 요청했다. 어차피 여야 모두 이 같은 말장난은 이제 '장군 멍군'이 됐다. 이제부터라도 국민들에게 초등학교를 졸업한 정치인들의 면모를 보여주면 된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