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칼럼] 힘내라, 구조대!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1 16:45

수정 2014.10.28 05:24

[곽인찬칼럼] 힘내라, 구조대!

꼭 30년 전 전남 해남군과 진도군을 잇는 진도대교가 개통됐다. 길이 484m짜리 국내 최초 사장교(斜張橋)다. 사장교는 비스듬한 줄로 다리 상판을 매달았다는 뜻이다. 서울 올림픽대교, 서해대교, 인천대교도 사장교다. 진도대교가 국내 첫 사장교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다리 아래가 바로 울돌목이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 맞서 명량대첩을 거둔 곳이다. 이곳은 물살이 워낙 빨라 바다 밑에 교각을 세우기 힘들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양쪽 해안에 각각 69m 높이의 탑을 세웠다. 거기에 강철 케이블을 걸어 상판을 지탱했다.

울돌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맹골수도(孟骨水道)가 있다. 인근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에 있는 물길이다. 바로 비극의 세월호가 침몰한 곳이다. 이름부터 험악하다. 맹골도는 섬 주변에 뾰족한 바위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거차도란 이름도 거친 바다란 뜻을 담고 있다. 맹골수도의 유속은 일대 바다에서 울돌목 다음으로 빨라 사고가 잦다.

해양경찰청·해군 구조대원들이 맹골수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구조작업을 펴고 있다. 대통령은 최선을 다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국민들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잠수부들은 세월호와 연결된 가이드라인(밧줄)을 타고 수색 작업을 펴고 있다. 이들에게 밧줄은 곧 생명줄이다. 물살이 얼마나 빠른지 산소호흡기와 수경이 벗겨질 정도라고 한다. 간신히 선체에 진입해도 시야는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 만큼 탁하다.

불행히도 아직 반가운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선실 내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들의 속은 새까맣게 탔다. 선장과 선원들은 제 한 몸 빠져나가기에 바빴다. 초기 구조에 결정적인 골든타임,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에어포켓은 허무하게 사라졌다. 애타는 마음에 가족들은 구조지연에 항의하며 20일 진도대교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이들의 눈에 뒷북 구조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도 지금 믿을 건 구조대밖에 없다. 남을 구하려 제 목숨을 거는 이들은 존경과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다. 미국에선 소방관이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꼽힌다.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장래희망 조사에서도 부동의 1위다. 소방관 배지를 달고 상점에 들어가면 '소방관 디스카운트'가 있다. 재난 현장에선 소방청장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미국에서 소방관이 존경의 대상이라면 한국에선 위로의 대상이다. 박봉에 기피업종이다. 행여 그 연장선상에서 해경·해군 구조대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면 그건 잘못이다. 4년 전 천안함 사태 때 한주호 준위는 목숨을 잃었다. 공기통 호흡을 계속 하면 정신이 몽롱해져 정상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기 어렵다. 사후 잠수병에 시달리는 일도 흔하다. 깊은 물속에 있다 갑자기 떠오르면 핏속에 녹아 있던 질소가 거품으로 바뀐다. 그 거품이 혈액 속을 떠다니며 통증을 유발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417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597년 임진왜란 때 일시 물러갔던 왜군이 다시 쳐들어왔다. 정유재란이다. 원균은 연전연패했다. 그해 7월 이른바 칠천량해전에서 왜군은 무방비 상태의 조선 수군을 기습했다. 칠천량은 지금의 거제시 하청면 일대 바다를 말한다. 원균은 전사했고 조선 수군은 궤멸했다.

불똥이 발등에 떨어진 선조는 다시 이순신을 수군통제사로 불렀다. 이때 이순신은 말한다. "제게 전선(戰船)이 아직도 12척이나 남아 있습니다. 죽을 힘을 내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기세가 오른 왜군은 조선 수군을 업신여겼다. 이순신은 적의 교만을 이용했다. 울돌목을 최후의 전장터로 삼아 유인작전을 폈다. 왜선 133척 중 31척을 격침했다. 아군은 전사자 둘, 부상자 둘이 있었을 뿐이다. 세계 해전사에 보기 드문 완벽한 승리다.


4월의 바닷물은 아직 차다. 맹골수도에 뛰어든 해경·해군 소속 특수 잠수요원들은 울돌목에서 '기적'을 이룬 이순신 장군의 후예들이다.
사투를 벌이는 구조대원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보낸다.

paulk@fnnews.com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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