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월드리포트] 공인의 정의는 책임감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5 17:54

수정 2014.10.28 03:40

[월드리포트] 공인의 정의는 책임감

뉴욕을 비롯한 미국 동부지역 주민들에게는 유난히도 지긋지긋했던 겨울이 가고 드디어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상당수 미 국민들에게는 4월이 봄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야구 시즌을 시작하는 달로 인식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열성 야구팬인 조지 윌은 "우리에게 한 해는 계절이 두 개로 나눠진다. 하나는 '야구시즌'이고 하나는 '공허감(void)'이다"라고까지 표현한 바 있다.

이처럼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미국의 사회적 문화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 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선수들은 너무나 많지만 그중에서도 미국 국민들은 조 디마지오를 특히 좋아한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인물이자 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있는 조 디마지오 선수(1999년 사망)는 선수 생활 동안 56 연속 경기 안타 등 무수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디마지오가 야구 경기장에서 사회에 남긴 최대 업적은 그가 세운 수많은 기록에서만 나타나지 않았다. 디마지오가 스포츠 스타에서 '국민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 이유는 수십여년 전 어느 한여름날 점수차가 많이 벌어진 야구 경기에서 남겨졌다.

당시 경기에서 큰 점수차로 앞서고 있던 양키스의 9회초 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선 디마지오는 안타를 친 뒤 1루에 머물지 않고 전력 질주, 평범한 1루타를 2루타로 만들었다. 경기가 끝난 뒤 기자들이 물었다.

"경기는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디마지오 당신은 왜 부상을 무릅쓰고 2루까지 전력질주했습니까?" 이에 대해 디마지오는 "오늘 이 경기를 보러온 팬들 중에는 내가 뛰는 모습을 처음 보는 소년, 소녀들이 많았을 것이다. 내가 2루로 갈 수 있는데도 점수차가 크다고 해서 1루에 머문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들의 마음속에 '조 디마지오'라는 선수는 '2루로 뛰기 귀찮아 1루에 머무른 게으른 선수'로 영원히 낙인될 것이 아닌가"라고 대답했다.

공인(公人)의 정의는 '책임감'이라는 사실을 디마지오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2003년 '기록을 남기는 신문(paper of record)'이라고 자부하는 뉴욕타임스가 한 기자의 부정 기사로 인해 홍역을 겪은 적이 있다.

당시 신참 기자가 수차례에 걸친 부정 기사를 게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편집인과 편집국장이 사임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뉴욕타임스의 편집인과 편집국장이 그만두기까지에는 스스로 엄청난 고민과 번뇌, 갈등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렇기에 이유를 막론하고 두 사람이 보여준 '책임감' 하나만큼은 상당히 높게 평가할 만하다고 본다.

수년 전 뉴욕타임스에서 연수를 할 기회가 있었다.

연수 참여자 중 한 명이 뉴욕타임스의 한 관계자에게 "뉴욕타임스는 매년 1200여개의 정정 기사를 낸다고 들었는데 맞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명확했다.

"네, 맞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정정 기사를 신문의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절대 약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이를 결코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제대로 전달될 때까지 만족하지 않겠다는 저널리즘 철학은 뉴욕타임스를 세계 언론의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대한민국이 사상 초유의 국가재난사태로 깊은 시름에 잠겨 있다.

여객선이 침몰하는데 선장을 비롯한 일부 승무원이 먼저 배를 탈출했다. 인터넷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생존자인 것처럼 가장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인터넷은 우리 모두를 공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개개인이 올린 한마디나 행동 하나가 마치 전염성이 엄청난 바이러스처럼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진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온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

jjung72@fnnews.com 정지원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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