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재계 ‘습관적 위기론’ 문제 있다

임정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7 17:14

수정 2014.10.28 03:22

[데스크칼럼] 재계 ‘습관적 위기론’ 문제 있다

"올해 경기가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큰일입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필자는 올 연초 기업관계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우리가 많이 의존하고 있는 중국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우려의 목소리엔 더 힘이 실렸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위기론이 나오곤 했지만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실제로 지난해 역대 최고실적을 기록한 삼성전자가 달력이 바뀌자마자 허리띠 졸라매기에 들어갔고 주요 대기업들도 화답이라도 하듯 줄줄이 경비지출을 삭감하는 데 동참했다. 그만큼 심각한 경기침체와 매출감소를 예고하는 것으로 들렸다.

그런데 최근 1·4분기 성적표가 나왔다. 지난 24일 한국은행은 올 1·4분기 우리나라 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3.9%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분기보다 0.9% 증가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난해 1·4분기부터 성장률은 2.1%, 2.7%, 3.4%, 3.7%, 3.9%로 상승행진 중이란 것.

때마침 주요 기업체들도 1·4분기 실적을 쏟아냈다. 필자는 눈을 비볐다. 믿기 어려울 만큼 양호해서다. "그렇게 어렵다고 난리 치더니 이게 웬 성장세?"

현대차는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3.7% 늘었다고 발표했고 기아차도 4.5% 늘었다고 했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34% 증가하며 1조원을 돌파했다.

철강시장 공급과잉으로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포스코마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5.88%, 1.95% 늘었다고 발표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해 4·4분기(8조3100억원)보다 많은 8조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발표했고, 2·4분기엔 이보다 많은 9조원대 영업이익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치까지 내놨다.

더구나 하반기엔 경기회복세가 가시화될 것이란 예고가 나와 있는 상황이다. 원화 강세, 세월호 사건 여파 같은 악재가 있으나 올 연간 경기는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2000년대 들어 연초마다 위기, 불황, 비상 아닌 때가 없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기업들이 "심각한 불황" "위기"를 외치며 허리띠를 조르다 연말에 신기록을 세우면서 느슨해지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금융위기와 같은 큰 위기가 있긴 있었다. 그러나 매년 위기를 외치며 국민들에게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건 문제가 있다. 기업인들은 '불안한 상황에서 허리띠를 조르는 게 뭐가 나쁘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대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건 지출을 줄인다는 얘기다. 이는 바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다. 경제는 불안을 싫어한다. 불안하면 소비가 더 줄어들고 투자도 위축된다. 올 들어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활성화하는 등 내수경기 진작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는 걸 감안하면 연초의 과도한 몸 사리기는 퍽 아쉬운 대목이다.

연초 재계가 위기론을 외치며 지출예산을 삭감하지 않았다면 소비지표는 훨씬 좋아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지난 1·4분기 성장률이 3.9%가 아니라 4.0%가 됐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랬으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지 누가 알겠나.

사실 연초마다 습관적으로 기업체들이 부르짖는 위기론은 정확하게 말하면 불안론이다. "올해는 정말 불확실성이 높아 불안하다"가 제대로 된 표현이다. 불안하다는 말을 해마다 '어렵다, 위기다'로 왜곡해 표현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기업체들에 권하고 싶다.

아니 요구하고 싶다. 이제 새 출발하는 연초에 지나친 불안감을 조성하는 건 자제해 줬으면 한다.
굳이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필요하다면 "불확실성이 크므로 긴장하자"고 하길 바란다. 그러면 적어도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경제를 왜곡시키는 건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lim648@fnnews.com 임정효 산업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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