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제15회 서울국제금융포럼] (2) 리처드 쿠 日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신아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8 17:07

수정 2014.10.28 02:59

[제15회 서울국제금융포럼] (2) 리처드 쿠 日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희끗한 머리카락만 빼면 나이(60)보다 젊어 보인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더블버튼 정장 덕일까, 아니면 일본인답지 않게 정력적인 어투과 제스처 때문일까. 사실 리처드 쿠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사진)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지만 대만계다. 대학과 대학원은 미국에서 나왔다. 그는 솔직하다. 아베노믹스를 맹렬히 옹호하고 중국 경제가 일정한 한계에 도달했음을 지적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한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엔고 덕을 톡톡히 봤다는 주장도 거리낌 없이 편다.

일본을 옹호하는 듯한 논리가 살짝 귀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논리가 정연하니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을 대표하는 싱크탱크의 장수 수석이코노미스트답다. 저서 '세계 동시 대차대조표 불황'(2009년)은 국제 금융계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 24일 파이낸셜뉴스는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제15회 서울국제금융포럼을 개최했다. 포럼에 참석한 쿠 수석이코노미스트를 만났다.

대담=곽인찬 논설실장

―경제 강국이던 일본이 1990년대 초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에 들어선 이유는 무엇인가.

▲1985~1986년 일본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모두가 많은 돈을 빌려 민간에 투자했다. 소비도 늘고 일본 국내총생산(GDP)도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버블(거품)이 터지면서 자산 가격이 폭락했고, 대차대조표에 구멍이 났다. 만약 당신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느 국가라도 빚을 줄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부채 상환에 나서면 문제가 된다. 누군가는 저축하고 누군가는 돈을 빌리는 게 경제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민간부문은 대부분 부도난 상황에서 이미 부채가 많아 금리가 제로(0)로 떨어져도 대출받으려 하지 않는다. 돈이 돌지 않으니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결국 일본의 장기불황은 제로금리에도 불구하고 부채 상환에만 몰두한 경영진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야기된 부도였다. 일본 사람들이 소비가 아닌 빚을 갚는 데 돈을 쓰다 보니 잃어버린 10년을 불러왔다. 보통 '유동성 함정'은 은행 등 금융기관이 돈을 빌려주지 않고 금고에 쌓아놓고 있을 때 나타난다. 이번에는 돈을 빌리려는 이가 사라진 경우다. 대출자 실종 현상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추세이며 경제학자들은 이에 대해 연구한 적이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아베노믹스'는 효과가 있을까.

▲아베노믹스에는 통화정책(금융완화), 재정투입(공공투자), 성장전략(구조조정) 세 가지 화살이 있는데 이 중 두 번째인 정부 지출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민간부문은 15년에 걸쳐 대차대조표를 고쳤지만 이전의 좋지 않은 경험 탓에 더 이상 빌리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확한 대차대조표, 낮은 이자율, 적극적인 금융권이 있어도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두 번째 화살은 잘 작동되고 있으며 확실히 효과를 보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구조조정은 어떤가.

▲구조조정은 미시경제정책이다. 구조를 바꾸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국은 1980년대 초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규제 완화 정책이 15년 후인 빌 클린턴 행정부에 들어서야 성과를 봤다.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아베노믹스가 시작되면서 엔화 가치가 20~25% 절하됐지만 미국을 포함한 선진 7개국(G7)의 이의가 없었다. 2008년 가을 리먼 사태 이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1차 정상회의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참가국은 환율전쟁을 벌이지 말자고 했지만 약속을 지킨 건 일본뿐이었다. 미국과 영국 등이 양적완화를 통해 우회적으로 통화 가치를 낮춘 반면 엔화는 초강세를 보였다. 일본 기업들은 "우리도 양적완화하고 엔화를 절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아소 다로 총리는 각국이 경쟁적으로 통화절하에 나서면 경제가 망가진다는 1930년대 대공황기의 교훈을 기억했다. 아소 총리는 "일본은 채권국이니 가만히 있어야 한다"며 절하를 거부했다. 결국 일본은 유례없는 엔화 강세 속에 큰 타격을 입고 무역적자국이 됐다. 아소는 아베정권이 들어선 뒤 부총리 겸 재무상이 됐다. 아베정권 출범 뒤 아소 재무상이 국제사회에 "4년 전에 강대국 모두 절하했으니 이번엔 우리도 하겠다"고 하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엔고 덕을 봤다.

―향후 중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나.

▲중국이 2년 전 '루이스 전환점'을 통과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신흥국에서 농촌 잉여노동력이 도시화해 공장 등에 다 흡수됐을 때 루이스 전환점을 넘어섰다고 본다. 그때부터 노동자 임금이 급등하고 노동분쟁이 증가한다. 루이스 전환점을 통과하면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 질 좋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해 노동자의 높은 임금을 정당화해야 한다. 임금과 생산성이 같이 오르지 않으면 더 이상 외국 기업들은 중국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제조업자 상당수는 이미 중국의 인건비가 매우 높아졌다고 말한다. 중국은 지난 30년간 아주 가난한 나라에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나라로 성장했다. 그 뒤엔 한국, 일본, 홍콩, 대만 등 외국 기업들이 있다. 이들 해외기업 상당수가 중국을 떠났을 때 과연 중국이 홀로 그 짐을 짊어지고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문제다.

―중국과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영토분쟁을 어떻게 보나.

▲중국은 일본, 베트남, 필리핀 등 주변 아시아 국가와 동시다발적인 영토 분쟁을 겪고 있다.

이는 중국 경제에 바람직하지 못하다. 시진핑 주석은 국내 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에 대해서도 투자환경을 활성화해야 하며 영토 문제에도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주변국과 외교 마찰을 겪으면 일본, 베트남, 인도 등 글로벌 공급사슬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다.

정리=hiaram@fnnews.com 신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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