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특별기고] 우리는 ‘2류’입니다

유현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4.28 18:00

수정 2014.10.28 02:56

[특별기고] 우리는 ‘2류’입니다

가슴 아프다. 인재(人災)와 관재(官災)가 어우러진 최악의 합작품이다. 아무 죄 없이 희생된 착하고 온순한 저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성수대교가 끊어졌을 때도 이렇게까지 참담하고 분노가 치솟진 않았다. 그 사고들은 수습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졌지만 이번 참사는 대피와 구조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사상 최악의 희생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총체적 부실이 낳은 전근대적·후진국형 사고의 전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발생부터 수습까지 낙제점으로 일관했다. 예고된 비극이었다. 기본을 안 지키는 것이 얼마나 큰 재앙의 불씨가 될 수 있는가를 통렬하게 보여주었다. 하드웨어보다 더 엉망인 것은 소프트웨어였다. 선장과 승무원들은 기본 매뉴얼조차 몰랐거나 아예 무시해 버렸다. 탑승자들은 사전에 그 어떤 안전 교육도 받지 못했다. "구명조끼 입은 채 선실 안에 가만 있어라"는 엉터리 방송만 없었어도 수백명은 더 살 수 있었다. 배와 승객을 버린 채 앞다퉈 탈출한 뱃사람들은 국제적으로 비난과 조롱거리가 되며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책임감도 직업윤리도 바다 깊숙이 침몰해버렸다. 대책본부는 전혀 역할을 못한 채 발표 내용을 수정·번복하고 사과하기 바빴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꼭짓점으로 치달았다. 언론의 부정확한 보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괴담과 유언비어는 여전했다.

큰 사건이 나면 대책이라고 나오는 것이 뻔하다. 금지시키고 사람 바꾸고 새로운 조직 만드는 것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었으니 신선도도 효용성도 많이 떨어졌건만 판박이로 계속되니 잊을 만하면 사고가 다시 터진다. 이 글 쓰고 있는데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 하고 대통령도 수리한다고 한다. 총리도 물러나는 것밖에는 별 도리가 없는 분위기를 파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그동안 우리나라 장관의 평균 수명은 1년 남짓이다. 정권 한 번 바뀔 때마다 100여명의 장관이 등장했다 물러나니 인재가 남아나질 않는다. 미국 같은 큰 나라도 장관은 특별한 일 없으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한다. 경륜과 소신·비전을 갖추려면 갈고 닦는 데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또 까다로운 청문회를 통과할 만큼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가까스로 통과해 입각을 해도 대통령·여당·야당 눈치 살피느라 공무원 장악할 틈도 없다. 국회의원은 선거 때마다 50%가 바뀐다. 조직과 기구의 절반이 바뀌는 것이다. 4년간 국민의 실망이 분노 수준이었음을 방증한다. 하원의원 재선율이 90%에 가끼운 미국에 비하면 가히 혁명적이다. 제도와 관행·의식은 안 변하고 사람만 바뀌니 정치는 요동치고 정책은 불안하다.

가장 신선한 개선책처럼 보이는 것이 컨트롤 타워, 종합 대책본부의 신설 내지 확충이다. 전 정부 때 정보기술(IT) 컨트롤 타워 만들자고 역설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러나 한마디로 이번 사건은 대책본부가 없어서 잘못 수습하고 혼선을 빚는 것이 아니다. 총리가 있었고 청와대가 있었고 장관 두 명이 밤을 새워 지켰다. 문제는 합동·연합·역할 분담이 안 되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탓이다. 칸막이를 치우고 벽을 허물어야 한다. 해마다 두세 번만이라도 부처 간·기구 간·사람 간 합동 훈련을 했더라면 이런 수준 이하의 결과는 안 나온다.

이번에 구조팀을 비롯해 관련 공무원들의 노고는 눈물겹다. 그런데도 유족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재난 사고는 해마다 숱하게 발생하는데 왜 부처 간 합동 훈련을 하지 않는가. 언제까지 말로만, 서류로만 건성건성 넘어갈 것인가. 새로운 종합 컨트롤 타워는 한마디로 옥상옥이다. 현재의 재난대책본부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부터 먼저 고민해보라. 이런 식이라면 매번 사고 날 때마다 하나씩 만들고 없애야 한다. 분야별로 사명감 있고 숙련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런 일은 생색나지 않으니까 알면서도 그동안 미뤄둔 것이다. 종합 컨트롤 타워가 절실한 곳은 따로 있다.

안전을 중시한다고 행안부에서 안행부로 바꾼 정부다. 이름은 바꾸었지만 의식은 옛날 내무부 수준 아닌지 생각해보라. 금지·제한·축소·허가·심사 같은 얘기는 이제 더 이상 관심도 못 끌 대책이다. 이것이야말로 부처가 힘쓰는 새로운 규제다. 이런 대책만 나오면 공무원들 표정 관리하기 바쁘다. 자율적으로 정하면 될 일을 또 정부에 간섭권을 주는 것이다. 규제는 이런 식으로 생긴다.

해수부 부활이 만능은 아니었다. 역시나 '가재는 게 편'이었다. 해수부·해경·해운조합·해운업체 사람들의 유착 관계는 뿌리 깊고 끈끈했다. 원전 비리, 저축은행 사건에서 보듯이 다른 곳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오죽하면 전·현직 관료와 '마피아'를 짝지은 '해피아' '모피아' '교피아' '산피아' '원전 마피아' 같은 합성어가 유통될까. 심지어는 이들을 통칭해 '관피아'라 부른다. 관료를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전락시킨 것은 관료 자신들이다. 한 가지, 이 사건 이전에 해수부 부활이 안 됐다면 모든 책임이 거기로 쏟아져 내각 총사퇴 압력을 배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관련 업체에 생판 모르는 사람을 보낼 수는 없다. 관련 공무원보다 더 나은 전문가 집단이 있을까? 다만 이들이 가서 나아진 것도 없고 국민이 반기지도 믿지도 않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유착 관계, 불법 거래, 실적 저조, 비정상, 비능률'이란 수식어로 평생 공직에 봉사한 명예에 스스로 먹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공무원이 가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명예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엄단하는 시스템이 개발돼야 한다.

사람과 조직만 바꾸는 한 우리는 계속 2류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의식과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 입장에서 생각하고 국민 마음에 젖어들어 행동해야 한다. '국민'이란 말 참 조심스럽다. 사건이 터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국민'을 팔아 이권 챙기고 한 자리 차지하려는 세력이 아직도 만만찮다. 인사권자는 이들을 가려내는 안목과 견식이 있어야 한다.

기득권과 고정관념 탈피도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이른바 진보와 보수가 고질적으로 대립해왔다. 변화와 성찰 없이 진영 논리에 갇혀 어느새 기득권 옹호 세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진보가 불변하면 보수가 된다는 사실을 한국의 '꼴통 진보'만 모르는 것 같다. 보수는 보수대로 자극과 경쟁이 없으니 더욱 진부해지는 것이다. 기껏 국회에서 세율을 얼마 더 높이느냐 낮추느냐를 놓고 날밤을 지새운다. 국민 눈에는 허송세월하는 것으로 비친다. 본질은 없고 변죽만 울리는 전형적 2류 행태다.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면서 이익 집단의 목소리가 강성해지고 분화·분파 현상이 가속화됐다. 저성장·저고용의 만성화로 '파이'를 키우기가 힘들어지자 내 것은 챙기고 남의 것은 빼앗는 일종의 강박관념까지 생겼다. 치열한 기득권 지키기 사회가 됐다. 공무원부터 노조에 이르기까지 이 점은 난형난제다. 부처 간·이익 집단 간 협조와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정부의 조정 능력이 떨어진다. 법이 사회 변화를 못 따라가고 법과 명령·규제만으로 안 된다는 것이 입증되었는데도 아직 구태에 젖어 있으니 2류 탈피를 못하는 것이다. 대통령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범국민·범국가적 차원의 어젠다로 설정,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서야 겨우 가능할 일이다.

흉내는 원숭이도 낼 수 있는 법, 말로써 될 것이라면 개혁은 벌써 완성됐다. 총체적 부실인 만큼 대응 또한 총력적이라야 가능하다. 내 살을 도려내고 내 뼈를 깎아내겠다는 그런 각오, 그런 자세라야 2류 탈피를 할 수 있다. '사람만'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철학과 사고가 바뀌고 시스템과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려면 대통령부터 국민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가슴으로 아픔을 함께하는 지도자, 그 진정성이 확인될 때 국민은 움직일 것이다.
2류라는 꼬리표도 그때 비로소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갈 것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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