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용평가업계의 갑을논란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비롯한 모든 경제 주체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상생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경제 민주화와 창조 경제라는 대명제 아래 갑을(甲乙) 관계 개선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린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모든 부문에서 여전히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갑을 관계는 기본과 원칙을 무너뜨리고 사회 갈등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심지어 기업의 신용등급을 가장 공정하게 매겨야 할 신용평가사들에게도 이 같은 갑을 관계는 여지없이 적용된다.

신용등급은 기업들의 재무안정성 지표다. 때문에 기업들의 각종 투자나 거래의 '바로미터'로 작용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높은 신용등급을 받아야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발행할 때 낮은 금리 조건과 함께 안정적인 수요층을 확보할 수 있어 유리하다. 이렇기 때문에 기업들은 저마다 높은 신용등급을 따내기 위해 신평사들에게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른바 을(乙)로 전락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든 기업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채 신용등급 AAA부터 D까지의 18개 등급 중 원리금 상환 능력이 우수한 AA 이상인 기업은 신용평가사들에 이른바 '갑질'을 한다.

이 기업들은 채권 발행 등을 할 때 두 곳 이상의 신용평가사로부터 등급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신용평가사 선정 시 수수료 인하나 높은 등급을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신용평가업체 한 관계자는 "일부 지방공사는 안정적인 정부 수주 물량에 힘입어 신용등급 AA 이상인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해당 도(道) 차원에서 신용등급 상향을 강력히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반면에 투기등급에 해당하는 BB+ 이하는 계약에 있어 불리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는 부채 규모가 크고 부채 증가율이 높은 일부 공기업이 채권 발행 시 AAA 신용등급을 받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렇게 되면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일수록 투자자들에게 낮은 금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십억원의 이자절감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작 절실히 자금조달이 요구되는 낮은 단계 발행기업의 경우 쓸데없는 평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공정한 품질 경쟁을 통한 신용평가사 간 행태가 고착화돼야 기업의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음은 두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kiduk@fnnews.com 김기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