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월드리포트] 월드컵 축구와 국력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5.23 17:42

수정 2014.10.27 05:52

[월드리포트] 월드컵 축구와 국력

전 세계를 열광의 분위기로 몰아넣을 브라질 월드컵 축구대회가 이제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골수 축구 팬들은 "축구는 전쟁"이라고 말한다.

월드컵 축구 경기를 지켜보고 있으면 이 말이 어떤 말인지 이해가 간다.

국가를 상징하는 색깔을 온몸에 칠하고 90분 동안 목이 터져라 자국을 응원하는 관중의 모습을 보면 월드컵 축구 경기는 무기나 폭력 없는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평화적인 전쟁'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힘은 해가 거듭할수록 강해지고 있다.

사실 한국이 '축구 전쟁'에 적극 개입하게 된 것은 3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1986년 멕시코 대회를 시작으로 월드컵 대회에 본격적으로 명함을 내기 시작했지만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텔레비전을 통해 한국팀이 세계 각국의 강팀들에 패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한국인들은 우리 축구팀의 실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2002년 한국이 월드컵 대회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달성하고 축구 강국 대열에 진입로를 열면서 30년 전의 상황을 좀 더 정확한 눈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 축구 선수들의 실력이나 기량이 1980년대 중반에 비해 훨씬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한국팀의 실력은 브라질,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 축구강국에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대한민국 축구가 과거에 비해 확연하게 변한 것은 축구팀에 대한 팬들의 응원이다. '붉은 악마'라는 애칭 아래 이제 대한민국 축구팀은 그 어느 나라 응원단에 비해 뒤지지 않는 '12번째 태극전사'를 세계 그 어느 곳에도 대동할 수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열린 한국과 코스타리카의 친선경기를 텔레비전을 통해 본 적이 있다.

경기 내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대한민국의 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경기가 열린 로스앤젤레스의 콜로세움 스타디움은 마치 한국의 경기장을 연상시키듯 거의 모든 광고판이 한국의 기업들로 도배가 돼 있었다.

'국력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이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했던 아프리카의 토고를 대한민국 국민은 기억할 것이다. 토고는 당시 한국, 프랑스, 스위스와 같은 조에 속해 있었다. 한국은 토고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경기의 상대가 됐다. 당시 경기를 보면서 나는 '토고는 바로 1980년대 우리의 모습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경기장에는 1만여 '붉은 악마'들의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에 제대로 된 응원단 없이 경기장 이곳저곳에 뿔뿔이 떨어져 경기를 지켜본 수백명의 토고 국민들은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에 기가 죽어 조용히 경기를 관전해야 했다.

그랬다!

바로 이 모습이 30여년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 수만여 이탈리아 팬들이 '아주리' 현수막을 들고 경기장을 뒤흔들었을 때 한국 대표팀은 동포 수백명이 초라하게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을 응원이라고 위로하며 뛰어야했다. 축구실력도 실력이지만 '국력'에서 밀렸던 것이다.

당시 국력이 약했기에 응원단을 원정 경기에 보낼 수 없었던 우리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조직적이고 강력한 축구 응원단이 돼서야 비로소 회상할 수 있는 아픔이자 교훈이다.

'붉은 악마'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 6000만 한민족이 잠을 설쳐가며 열심히 노력해 함께 일궈낸 '힘'의 결과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에는 동족의 혼과 보람, 그리고 자부심이 섞여 있다.


우리의 대한민국…. 아무리 정치가 썩어빠지고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지만 30년 전에 비해 나아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jjung72@fnnews.com 정지원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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