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월드리포트] 동아시아의 합종연횡

김홍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5.30 17:50

수정 2014.10.26 22:15

[월드리포트] 동아시아의 합종연횡

중국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에 강대국인 진나라를 비롯해 연, 제, 초, 한, 위, 조 등은 천하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다.

이때 귀곡자의 제자인 소진은 연나라와 나머지 5개국에 "진나라 밑에서 쇠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며 이들 6개국을 남북으로 연합시켜 서쪽의 진나라와 맞서도록 했다. 이것을 '합종'이라고 한다.

그 뒤에 귀곡자의 또 다른 제자 장의는 합종은 일시적인 허식에 지나지 않는다며 6개국이 진나라와 횡적 동맹을 맺도록 설득시켰다. 이를 '연횡'이라고 하는데 결국 진은 연횡을 통해 합종을 타파하고 6개국을 차례로 멸망시켜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다.

이 '합종연횡'의 고사가 최근 동아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정치·군사적 갈등을 둘러싼 각 국가 간 외교 전쟁에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소원한 관계에 있던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은 데 이어 일본과 북한도 관계 회복의 계기를 마련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 26~28일 스웨덴에서 열린 북한·일본 간 협상에서 양국은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재조사와 대북제재 해제를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북한이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일본인 납치 피해자 및 행방불명자 등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면 일본도 이에 맞춰 북·일 간 인적왕래 규제, 송금 및 휴대금액 제한 규제, 북한 국적 선박의 일본입항 금지조치 등을 해제키로 했다.

과거 역사·납치 문제로 갈등을 빚던 북한과 일본이 이 같은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양국 지도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미국과 한국 등이 6자회담 전제조건으로 선제적인 핵포기를 요구하며 대북 원칙론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지난해 '친중파'인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지면서 탈출구를 모색하는 상황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한국, 중국 등과 역사적인 문제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최대 숙원사업인 집단 자위권을 용인받으려면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북·일 간의 '빅딜'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중국은 반대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당장 한국과 미국 정부는 한·미·일 3각 대북공조체제가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준비 동향이 관측되는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어느 때보다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 아베 정부가 독자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정부가 대북 제재 해제에 나설 경우 사실상 대북공조체제는 균열이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도 그동안 북한과 주변국들의 대화를 통한 관계 회복을 강조해왔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역사, 영토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과 북한이 합의를 이룬 점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다음 달 한국 방문을 앞두고 역사 문제 등에 있어서 한·중 공조를 강화해 대일 압박의 수위를 높이려던 계획도 차질이 예상된다.

앞서 중국과 러시아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합종연횡의 산물이다.

중국은 미국이 일본, 필리핀 등과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압박하자 러시아와 손을 잡고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해 대내외에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 미국 등의 제재가 강화되자 중국과 10여년간 끌어온 400조원 규모의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통 큰 선물을 주고 '신밀월시대'를 예고했다.


이처럼 국가의 이익을 위해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세상이다. 중·러 관계 개선과 북·일 협력 강화 등 주변국의 발 빠른 변화에 한국의 외교는 또다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과거 중국의 진나라가 합종연횡을 통해 천하의 패권을 차지했듯 한국의 외교가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hjkim@fnnews.com 김홍재 베이징특파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