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 부의 편중 막을 신자본주의가 필요하다

임정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4.06.04 17:52

수정 2014.06.04 17:52

[데스크칼럼] 부의 편중 막을 신자본주의가 필요하다

"주식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흔히 있다. 몇천만원으로 100억원대 재산을 모은 사람도 있고 이미 2000억~3000억원까지 불린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들의 목표는 한결같다. 100억원으로 불린 사람은 1000억원으로 불릴 것이라고 하고 2000억~3000억원 모은 사람은 1조원으로 불리는 게 목표라고 한다." 얼마 전 나름 '주식투자의 고수'로 불리는 한 지인이 필자에게 들려준 말이다.

한 2~3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모 금융권 고위 인사와의 저녁자리였다. 그는 3000억원대 현금재산을 가진 한 부자고객 얘기를 꺼냈다. 그렇게 큰돈을 가졌지만 재산을 끝없이 늘리려 하는 건 물론이고, 자신을 위한 목적 외엔 일절 돈을 쓰지 않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의 집은 이중 삼중의 보안장치가 돼 있었고 보안장치가 된 문을 여러 개 통과해야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말도 했다. 이 얘기가 일부 부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개인이 적게는 몇십억원에서 몇백억, 몇천억원까지 현금을 거머쥐는 일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주식투자, 벤처투자, 부동산투자 등으로 이런 부자들이 크게 늘었다. 한국에 이 같은 부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최근 영국계 부동산컨설팅 업체 나이트프랭크가 발간한 '2014 웰스리포트(The Wealth Report 2014)'에 따르면 한국에 3000만달러(약 300억원) 이상 자산가는 지난해 말 현재 1565명으로 돼 있다. 이런 자산가의 수는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의 부 증식속도도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그런데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충격적인 자료를 발표했다. 한국 남성의 실질적 은퇴연령은 71.1세로, OECD 국가 중 멕시코(72.3세)에 이어 두 번째란 것이다. OECD 평균은 64.2세였다. 또 'OECD 2014 통계연보(Fact Book)'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빈곤갭(Poverty Gap) 비율은 39%로, 스페인(42%)과 멕시코(41%)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빈곤갭이란 빈곤가구의 소득이 최소생활에 필요한 소득수준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표현한 수치다. 한국이 멕시코 다음이라니. 멕시코가 얼마나 부의 쏠림, 빈부 격차가 심한지 아는 필자로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부자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희망 없이 살아가는 멕시코를 보면서 필자는 절망감을 느끼곤 했다.

돈을 쓸어 담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주머니는 텅텅 빌 수밖에 없다. 부의 편중은 필연적으로 위기를 초래한다. 이는 역사가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가난한 대중의 불만은 커지고 분열과 갈등으로 사회불안은 심화되기 마련이다. 국가가 흥하려면 국민통합이 필수적이지만 이런 환경하에선 희망사항일 뿐이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지금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부의 쏠림이 어떤 형태로든 개선되지 않는다면 위기는 갈수록 심화될 게 뻔하다.

파리경제대학 교수 토마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론'이 요즘 각광을 받는 것도 다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본 소유자들의 수익이 경제성장보다 세 배나 빨리 성장하면서 19세기에 심각했던 불평등 현상이 21세기에 재연되고 있다"며 '부유한 개인에게 80%의 누진세를 부과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영국 찰스 왕세자가 지난달 런던의 한 콘퍼런스에서 한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약자를 배려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하다.
기업이 공동체와 환경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는 파국에 직면할 것이다."

lim648@fnnews.com 산업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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